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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전 동국대교수의 가짜 학위파문이 섹스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신정아씨의 누드라고 추정되는 사진이 문화일보의 지면을 장식하면서, 사건은 사문서 위조와 이에 따른 업무방해행위라는 범법의 차원에서 뒷배가 누군가 하는 '섹스 스캔들'로 전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여론을 선도한다던 주요 일간지인 조선, 동아일보 등도 앞을 다투어 신정아씨 누드사진을 인터넷에 게재하면서 언론의 선정성은 극에 달했다. 문화일보는 사진 게재와 관련해서 "이 사진이 신씨가 각계 인사들에게 성(性) 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면서 "사건 실체 이해의 중요 단서로 판단했다"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싸구려 변론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30대 젊은 여성의 올 누드 사진을 보면서, 학력위조의 진상과 고위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및 범법행위에 대한 논의를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신정아 사건에 대한 주요 언론의 선정적 보도태도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개인의 인격권 침해 및 사생활 침해라는 심대한 문제점을 남겨 놓았다.
프라이버시권 혹은 사생활 권은 19세기말 이래 미국에서 발달해온 개념이다. 미국의 황색언론이 유명인사의 사생활 폭로에 사운을 걸었던 무렵인 1890년, 워렌(Warren)과 브랜디스(Brandise)는 처음으로 프라이버시권 문제를 제기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의 일이며, 영화배우 윤정희씨의 여동생에 대한 여성 월간지의 기사가 문제가 된 사건에서, 서울 지방법원은 "프라이버시란 우리 헌법 제17조에 표현된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프라이버시권이란 자기만이 간직한 비밀을 공개당하거나 간섭을 받아 정신적 타격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말한다"고 판시하였다.
신정아씨 누드사진 게재는 분명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 물론 문화일보는, 프라이버시권이 국가 안전보장이나 공공복리 및 질서유지를 위하여 제한될 수 있다는 헌법 제 37조 2항의 면책사유에 근거해서, 국민의 알권리라는 공익을 위하여 신정아씨 누드사진을 게재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익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사생활권 침해이며 언론의 선정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나아가 신정아씨 누드사진 게재는 신정아 사건을 통해서 정통언론이라면 반드시 논의해야할 것들 혹은 논의했었던 것들을 묻어버리고 말았다. 학벌사회,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 및 권력남용, 대학재단의 전횡, 미술관 운영 및 미술계의 부조리 등 다양한 논의가 누드사진 한 장으로 파묻혀 버렸다.
얼마나 많은 언론이 신정아의 사생활이 아닌 보다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나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신정아 사건이 보도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일면을 양보했으며, 보도되지 못하였는가도 고민해볼 일이다.
지난 2002년 9월을 생각해보자. 대통령 선거가 세달 앞으로 다가온 그 시점에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신정아씨로 추정되는 누드사진 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산적해 있으며, 우리는 정통 언론의 길라잡이를 필요로 한다. /박정의 인하대 교수·언론정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