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광장
요즘 잇따른 '여성의 성'과 관련된 비상식적인 사건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먼저 MBC 에서 다룬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간 고교생들의 집단 성매매 의혹이다. 고교시절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는 수학여행이 집단 성매매로 얼룩지고 있다는 믿기 힘든 사건이다. 교육당국에서는 서둘러 사실 확인에 들어가고 해외 수학여행을 자제하라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둘째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언론인들과의 식사 도중 '인생의 지혜'라며 마치 훈계처럼 '마사지 걸(여자)을 고를 때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여성비하' '성매매 장려'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이 후보 측에서는 사적인 농담이라고 슬쩍 덮어보려 하지만, 대통령 후보와 언론인의 회동을 사적인 자리로, 한발 물러서 사적인 자리라고 하더라도 이 후보의 발언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또 하나는 문화일보가 학력위조로 물의를 일으킨 신정아씨의 누드사진과 '성로비 처벌 가능한가'라는 기사 게재를 서슴지 않은 사건이다. 일부 다른 언론도 '특종'인 냥 문화일보를 뒤따랐다. 이로 인해 언론이 선정적인 누드사진 게재로 사태의 본질을 가리고 한 개인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일련의 세 가지 사건을 살펴보면 그 공통분모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한 것이다. 대상화의 주체는 정치인과 언론인, 학생까지 포함해 모두 남성이다. 여기서 여성은 인격으로 읽히기 전에 생물학적 여성성인 몸으로 먼저 읽힘을 알 수 있다. 그 대상화의 이면에는 계급도 권력도 뛰어넘는 가부장제적 무력이 존재한다. 성매매업에 종사한 여성·매 맞는 여성·성폭력 피해여성 등은 모두 여성의 몸을 대상화해서 생긴 피해자다. 물의를 일으킨 신정아씨도 가부장제적 무력의 피해자가 됐다.
여성이 권력 중심에 있어도 몸의 대상화를 피할 수는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사회적 관행에 의한 폐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기시켜야 할, 그리고 고쳐나가는데 앞장서야 할 언론과 정치인이 거꾸로 이를 부추긴다는데 있다.
언론이 '성'을 다루는 관점을 더 이야기해 보자. 흥행을 좇는 언론은 정치인이든 장관이든 정견이나 입장보다 여성으로서 그의 패션이 어떻다는 이야기에 치중한다. 국내 첫 여성 법무부장관이 탄생했을 때에도 그의 업무능력이나 인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패션리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대담한 귀걸이나 의상에 대해 비교하고 떠들어댔다. 2004년인가, 여성할당제로 인해 적지 않은 수의 여성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월간지에서 여성 국회의원들 중 누가 패션이 뛰어난가가 실렸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치마를 입으면 패션리더이고 바지를 입으면 전투복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행태는 일자리를 구하는 여성을 여전히 키와 몸무게 제한규정에 옭매어 둔다. 물론 소비중심 사회에서 남성에게도 몸이 중요한 정체성의 자원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여성들의 대부분은 일할 능력보다는 몸을 먼저 평가받는다. 이는 여성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노동의 가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으로의 역할만 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여성은 한 인격체가 아닌 관음증의 대상·매매의 대상·인권침해의 대상이 된다.
문화일보의 신정아씨 누드사진 보도처럼 언론은 지금까지 이런 관행을 유지시키고 오히려 부추긴 책임이 크다. 때문에 해외 수학여행에서 집단 성매매 의혹을 사고 있는 학생들만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의 역할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언론에게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인권을 짓밟으면서까지 국민에게 볼 것을 강요하는 권한을 준적은 없다
부당하고 잘못된 권력행사가 독자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마저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언론은 명심해야 할 때다. /김영란 인천여성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