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중국의 양귀비나 서시는 전설적인 '경국지색'으로 알려졌다. 타고난 몸 하나로 왕의 사랑을 독차
지한 후 모든 정치를 떡 주무르듯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국지색이란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이다. 자고로 '이불 속 정치'라는 말이 있어왔으니 임금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양상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도 비슷하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 보더라도 장희빈 등 수없이 많은 '역사 속의 여인'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가장 깨끗하고 도덕적이며 개혁적이라는 자평을 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서 '신정아 사건'이 터졌다. 대학도 안다녔고 박사도 아닌 젊은 여자가 국내 유수의 성곡미술관이나 금호미술관의 큐레이터를 해낼 정도라면 그 능력은 탁월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시회 기획을 내놓으면 대기업과 주요 은행 등에서 후원금을 준다.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좋을 데가 없다.
문화산업에 후원하기를 반겨하지 않는 한국의 기업풍토에서 많은 후원금을 시시 때때로 받아내는 신정아의 능력은 큐레이터로서는 특급이다. 예일대를 나왔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고 박사라고 하니 그렇게 대접하면 된다. 그가 전공했다는 미술사는 큐레이터의 기본이다. 게다가 동국대의 교수로 특채되고 광주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니 신데렐라가 따로 없지 않은 가.
신정아 문제의 당사자들인 장윤, 한갑수, 변양균, 홍기삼 등은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은 것처럼 몸을 숨겨버렸다. 40일이 넘도록 검찰조차 손을 대지 않다가 신정아의 집을 수색하여 변양균의 꼬리를 밟았다.
그들 간에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공개되더니 이제는 나체사진까지 등장했다. 편지는 '관계'증거물로 유효하지만 사진공개는 유치하다. 사기꾼이지만 포르노 배우는 아니다. 왜 이 사건을 한낱 선정성으로 유도하는가. 때마침 청와대에서 대통령 부인 권여사가 사퇴한 변양균의 부인을 불러 점심을 같이했다.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던 청와대 대변인은 몇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사실을 털어놨다.
왜 감추려고 했을까. 이에 대해서 새정치연대 대표 장기표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시사논평에서 "이 사건의 몸통인 노무현 대통령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나섰다. "깜도 안 된다, 소설 같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던 노무현이 이 사건의 몸통이라는 그의 주장은 앞으로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살아있는 최고 권부를 향하여 비수를 던진 장기표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반독재운동의 선봉에서 싸우다가 숱한 옥고를 치른 재야민주인사다. 노대통령 부부와는 김해 같은 고향으로 초등학교 선후배다. 그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고 있지만 단순히 이름 알리기로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그는 이 글 속에서 변양균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해찬이 자신이 몸통이라고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청와대를 압박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한갑수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 사건 초기 신정아감독 선임과 관련하여 "모 재벌 회장이 추천했다"고 밝혀 회장 이름이 곧 드러날 것 같았는데 끝내 감춰진 것은 노무현의 적극적인 은폐의지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한 신정아가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에도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장기표의 이러한 폭로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에게 허탈감과 좌절감을 만끽하게 한다.
다만 그가 말하는 대로 이 사건을 "끝까지 버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것이라고 보고 또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자신이 관련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 사건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부인해 자신은 관련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싶었겠으나 그것이 도를 넘음으로써 오히려 이 사건의 몸통이 노대통령임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우리 국민의 심정이다. 신정아에게 우리의 대통령이 넘어갔다는 것은 국민의 치욕이다. 아무리 현대판 경국지색이라고 할지라도 대통령은 그 동안 큰 소리 친 만큼 의젓하고 떳떳할 것임을 믿고 싶은 게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