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한 강영우 美 백악관 국가장애위 정책차관보
“장애인이기 때문에 ‘나는 안된다’라는 소극적 사고보다는 삶의 비전을 갖고 실천하는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강영우(62) 박사는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라는 공식 직함과 함께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이란 별칭을 가진 인물이다.
 장애를 극복한 자신의 자전적 교육관을 담은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생명의 말씀사) 출판을 기념해 방한 중인 그가 지난 4일 인천시 남구 학익동 인천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한글점자를 창안한 고 송암 박두성 선생 기념관이 이 복지관에 입주해 있어 인천지역 시각장애인들에게 용기와 꿈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어렵게 일정을 마련한 것.
 강 박사는 “장애인에게 가장 큰 적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바로 자신”이라며 “장애를 축복으로 생각하고 긍정적 태도를 갖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미국 루즈벨트재단이 선정한 세계 ‘127인의 공로자’에 오른 유일한 한국인인 강 박사. 하지만 그에게도 ‘장애’라는 껍질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때가 있다.
 중학생 시절 축구를 하다 시력을 잃은 강 박사는 그 해 부모님을 동시에 여의는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다.
 강 박사는 “당시 ‘난 장애인이다’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고통이었다”며 “맹인재활원에서 손가락 끝으로 점자 읽는 법을 깨우치며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회했다.
 그런 그의 장애극복 의지는 결국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꿔 놓았다.
 연세대 교육학과 지원 당시 ‘시각장애인 입학 금지’를 깨뜨린 최초의 시각장애인으로, 국제로타리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철학 박사학위를 땄을 때도 그에겐 항상 시각장애인 최초·최고란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강 박사는 대학 진학과 유학이란 1차 목표를 이룬 후 좋은 가정을 꾸리겠단 2차 목표도 일궈냈다.
 큰아들 진석씨는 시각장애인에게 ‘빛’을 주는 안과의사가 됐고 둘째 아들 진영씨는 미국 민주당 원내총무 수석법률보좌관으로 활약 중이다.
 이제 그는 생애 마지막 목표인 ‘봉사’를 위해 뛰겠다며 의지를 불태운다.
 강 박사는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남은 생애를 봉사하며 보내고 싶다”며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이 더 이상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세상과 싸워 나가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글=박석진기자 (블로그)sjjj7907·사진=양진수기자 (블로그)eos1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