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에 누구나 한번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늘을 살고 있는 ‘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혹을 품어보기도 하고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철학적인 탐구가 바로 사주학을 발달시킨 계기가 된다.
인간이 태고의 먼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행복 추구에 힘써왔으나 때로는 좌절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긍금증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건강, 직업, 운명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타고난 저마다의 자질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모두가 뜻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절망감이나 불안에 일부는 점집을 찾게 되고, 또한 약해진 마음으로 이를 신봉도 하게 된다.
앙굴라마라고 하는 청년으로 브라운의 제자가 있었다. 어느날 스승이 외출 중이었는데 그의 부인이 청년을 유혹하여 그를 침실로 유인하였다. 그가 그것을 거부하자 그녀는 노여움이 불 같았다.
남편이 돌아오자 선수를 치면서 제자에게 유혹을 당할뻔 했다고 호소하였다. 스승은 진유를 묻지 않고 부인의 말만 믿고 제자를 파문하려 하였으나 그 죄의 속죄를 위해서 거리로 나가 백명의 남녀를 죽일 것을 명령하였다.
누명을 쓴 청년은 곤란하였지만 스승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청년은 거리로 나가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백번 째 석가를 만나게 되었다. 비로서 그는 석가에게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제자를 받아드릴 것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죽인 그를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하였다.
청년은 브라만의 부인의 간언에 누명을 뒤집어 썼을 뿐, 살인을 교사한 사람은 브라만과 그이 아내였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살해한 하수인은 청년 자신이 분명하고 그가 실행한 것도 사실이며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잘 분간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은 가끔 눈에 보이는 사실만에 집착하여 남을 비난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분명히 판별할 줄 알아야, 남한테 속임을 당하지 않게 된다.☎(032)867-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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