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가 빈번히 발생해 '마계도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인천. 실제 범죄 발생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불명예다. 하지만 '동춘동 초등생 살인사건'·'미추홀구 모자 살인사건'·'논현동 스토킹 살인사건' 등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력범죄의 발생지 또한 인천이다. 수도권 최대 해안도시에서 이 같은 흉악범죄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울러 강력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어떠한 방향으로 사회를 선도해가야 하는지, ①피해자와 ②수사관 그리고 ③가해자(범인)의 관점으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2017년 7월 17일 발생한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A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17년 7월 17일 발생한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A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건 이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A씨의 모친은 잠드는 게 가장 두렵다. 겨우 잠에 들면 끔찍했던 그 날의 일이 또 꿈 속에서 나타나고 공포가 반복된다. 가끔씩은 자다 깨 방을 뛰쳐나와 A씨의 이름을 부르며 거실을 헤매기도 한다. A씨의 7살 딸도 이상행동을 보인다. 어느 날은 갑자기 "우리 엄마 죽었어"라고 세 번을 외치고는 어른들이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A씨의 딸은 "봤다"고 한다.

지난 2023년 7월 발생한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의 근황이다.

▲ 30대 남성 B씨는 인천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스토킹하던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 인천지법 형사15부(류호중 부장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B(31·남)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당초 B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지만 지난달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법원에 신청함에 따라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B씨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피해자 자녀가 범행 장면을 목격했다거나 피고인이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도 범행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형벌을 가중할 요소로 포함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자신의 죄를 처벌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다른 보복 범죄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영구 격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방청석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닦던 A씨의 사촌 언니인 C씨는 법정을 나선 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못해도 35년은 나왔어야 하지 않나. 너무 힘들다. 뭘 어떻게 더 증명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피해자를 보호해주길"

피해자의 친언니와 다름 없을 정도로 A씨와 가까웠다는 C씨는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애쓴 장본인이다. A씨가 자신의 아파트를 나선 뒤 모친과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살해당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건을 알리며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모아왔다. 실제 많은 네티즌들이 탄원서 서명에 동참했고 사건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A의 죽음이 사회적인 관심을 받은 이후부터 정부의 피해자 구제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초반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실질적인 보탬이 된 건 사실이다"

앞서 A씨의 모친이 머물 거처가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는 타 매체의 보도가 있었지만 C씨는 이후 진행된 정부의 도움으로 필요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사건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은 이후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작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들도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염려했다.

▲ 피해자의 사촌인 C씨는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사건을 알리며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모아왔다. 실제 많은 네티즌들이 탄원서 서명에 동참했고 사건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Y' 방송화면 캡처

범죄로 인한 생명·신체의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인 '범죄 피해자 보호법'은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의 기본 정책 등을 규정한 법으로 △범죄피해자는 범죄피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범죄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평온은 보호되어야 한다 △범죄피해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하여 각종 법적 절차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구조는 상담, 치료비 지원을 포함하는 의료제공, 구조금 지급, 법률구조, 주거지원 등이 있다.

C씨는 "사건이 많은 관심을 받은 뒤 신속한 구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변호사 선임부터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가 전부 감당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비슷한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동등한 구조 조치가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9년 4월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거동이 어려울 정도의 부상을 입은 조모(36)씨는 지난 5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치료를 받는 동안 친척들이 생계도 뒤로한 채 지원을 받기 위해 뛰어다녔다. 정부기관에서 먼저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다'고 안내한 적이 없었다. 직접 찾아내서 묻고, 매번 싸워서 받아냈다. 묻기 전엔 담당자들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친척들마저 없는 피해자는 어땠겠나. 지원을 호소하려면 유가족들은 슬퍼할 시간조차 내놓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시기를 놓쳐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구조금과 치료비·생계비 등 경제적 지원은 범죄피해 발생을 알게 된 날부터 3년, 혹은 범죄피해 발생일부터 10년이 지나면 신청할 수 없다. 지난 2017년 7월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한 김모씨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존재 자체를 몰라 혼자 수십만원의 치료비 등을 감당하기도 했다. 2022년에야 피해자 모임에서 지원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신청 기한이 훌쩍 넘어버린 뒤였다.

▲ C씨는 "보복살인이 일부 적용됐음에도 형량이 이렇게 짧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25년 뒤 조카(A씨의 딸)는 고작 30대 초반이고 가해자 역시 50대 중반으로 너무나 젊은 나이다. 보복할 마음으로 A를 살해한 가해자가, 엄마를 쏙 빼닮은 조카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로 두렵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TV 보도화면 캡처

이겨야만 하는 싸움

그나마 정부와 사회의 지원을 받아낸 A씨 가족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이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이겨야만 하는 싸움'의 과정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다. 무엇보다, 법리적인 다툼을 해야하는데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성적이 되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힘들지만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겨야 한다"

친동생과 다름 없던 사촌동생을 잃었지만 C씨는 슬퍼할 시간조차 없다. A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그 놈'에게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C씨는 "보복살인이 일부 적용됐음에도 형량이 이렇게 짧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25년 뒤 조카(A씨의 딸)는 고작 30대 초반이고 가해자 역시 50대 중반으로 너무나 젊은 나이다. 보복할 마음으로 A를 살해한 가해자가, 엄마를 쏙 빼닮은 조카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로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던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가 동료 수감자에게 "탈옥 후 피해자 집에 찾아가 보복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바 있다. 가해자는 또 "가만두지 않겠다. 보복 가능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도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에만 해도 특수상해죄로 징역 2년을 복역한 70대 남성이 신고한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를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출소 후 신고자 가족에게 "자수 안 하면 죽인다" 등의 내용으로 17차례 문자를 보내 협박했고 끝내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복범죄 발생 건수는 연도별로 2018년 267건, 2019년 292건, 2020년 293건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가해자가 붙잡혀 처벌받은 후에도 불안해하는 피해자가 많은 이유다.

▲ 사진=연합뉴스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줄곧 C씨는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을 언급했다. 가해자인 B씨가 합당하고 정의로운 법의 판결을 받아 이번 사건이 향후 다른 유족들에게 활용될 수 있는 선례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남아있는 조카를 위해서다.

"A는 사람을 좋아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봉사활동 동아리에 참가하기도 했고 누군가를 돕는 걸 좋아했던 아이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 않나. 나는 A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그의 딸만큼은 지켜줘야 한다"

메어오는 목을 가다듬고 C씨는 말을 이었다.

"언젠가 조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너의 엄마는 사람들을 돕는 걸 참 좋아했고, 잘했어. 그리고 떠난 뒤에도 그렇게 하고 있어.'라고"

그렇기 때문에 C씨는, 나올 수 있는 최고의 형량을 끌어내 범인에게 '철퇴'를 내려야만 한다. 시간을 되돌려 A씨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남아있는 삶을 빼앗긴 A씨와 그의 딸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