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칠장사는 7세기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절이다. 하지만 본격 기록이 나오는 것은 11세기 고려시대 들어서다. 유교 국가 조선시대에는 인조 때 인목왕후(소성대비)가 원찰로 삼으면서 중창되었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난 후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김제남)와 아들(영창대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칠장사를 원찰로 정했다. 그러나 칠장사는 이후에도 숙종 때 세도가들이 무덤 자리를 만들려고 절을 불을 지르는 일이 되풀이되는 수난을 겪었다.
하여튼 천년고찰답게 칠장사에는 역사 인물들의 전설이 여럿 전해진다. 버려진 신라 왕자인 궁예(弓裔)가 10살 무렵까지 이 절에서 지내며 활쏘기를 익혔다는 이야기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궁예는 칠장사에서 명사수가 되었다고 한다. 궁예라는 이름 자체가 '고구려 주몽의 후예'라는 의미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궁예의 활터가 지금도 칠장사에 남아 있다.
궁예의 시대로부터 200여년 뒤인 11세기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칠장사에 머문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나라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혜소국사는 칠장사에서 말년을 보냈다. 그런데 근동에서 악명을 떨치던 도둑 일곱 명이 혜소국사의 신통력으로 감화되어 불법에 귀의했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나한전에 모셔진 나한상은 바로 그 때 그 도둑들이며, 이들이 오래 머물렀다 하여 칠장사(七長寺)라고 절 이름까지 바꾸었다는 설명이 붙어 다닌다.
전설은 더 이어진다. 18세기 조선 영조 때 활약했던 어사 박문수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이곳 나한전에서 기도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과거시험 문제가 나타났다. 그 덕에 박문수는 장원급제하여 후일 어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선비라고 간절하면 부처님도 도와주는 걸까. 하여튼 칠장사 '박문수 합격다리'에는 요즘도 수많은 수험생 부모가 찾아온단다. 박문수보다 시대적으로 150년 정도 앞서는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병해대사)가 칠장사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병해대사를 찾아온 임꺽정 일행 7명이 칠장사 대웅전에서 의형제를 맺는 대목이 나온다.
칠장사는 천년고찰이지만 거대한 절집은 아니다. 전설의 의미를 되새기며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맛이 각별하고, 혜소국사비를 비롯해 보물 구경도 할 만하다. 바로 그 칠장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자승스님이 느닷없이 소신공양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지난주 전해졌다. 현대판 전설인가, 그저 지나가는 역사의 삽화인가. 조만간 칠장사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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