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ECH, 미국 등지에 해외 사무소
제조기업 글로벌 기술 협력 기반 다져
경제자유구역에 둥지…시너지 작용
뿌리기술, 소재·제품 생산 잇는 핵심 고리
기술 투자는 적기 놓치면 의미 없어
최태훈 소장 “인천 주력분야 육성 중요”
소부장 기업 생태계 조성 연구도 추진
예산안 정국에서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정치권은 국가 R&D 예산 삭감과 증액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였고, 기술 투자 중요성은 새삼 화두로 떠올랐다. 최태훈(54) 뿌리기술연구소장은 “기술은 적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다”며 “뿌리산업이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기술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뿌리기술은 제조업 전반에서 소재와 제품 생산을 잇는 핵심 연결고리다. 주조·금형 등 금속 소재 기술에서 로봇을 비롯한 지능화 공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바이오·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도 필수적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산하 연구 기관으로 2004년 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한 뿌리기술연구소는 첨단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인천경제자유구역 역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지난달 28일 신용석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국제협력특보와 만난 최 소장은 경제자유구역과 뿌리기술의 시너지에 주목했다.
▲기술과 연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경제자유구역 지향점도 외자 유치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었죠. 2021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보고에 의하면 국내 중소기업 98.2%가 글로벌 시장 진출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KITECH는 미국·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지에 해외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기술 이해도가 높은 뿌리기술연구소를 포함한 KITECH가 제조기업 글로벌 기술 협력 기반을 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연구소가 인천, 그중에서도 경제자유구역에 자리잡은 배경이 궁금한데요.
-인천에는 국가 3대 중소기업 산업단지인 남동산단 외에도 부평·주안 등 국가산단이 조성돼 있습니다. 자동차와 기계·장비 산업에 속한 제조기업이 많습니다. 시화·반월 국가산단과도 가깝고요. 설립됐을 때는 KITECH 본원에 있던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용접·접합 분야와 인천 '주물연구부'의 주조, 금형 분야가 합쳐진 조직이었죠. 전통적인 뿌리기술 연구자들을 결집한 셈입니다. 뿌리기술이 적용되는 기업군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연구 조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경제자유구역 지정 과정에서 연구소를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했고요.
▲연구소에는 언제부터 근무하셨습니까.
-2000년 KITECH에 입사해 2004년 설립 단계부터 연구소에 몸담았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소성가공을 연구했거든요. 소성가공은 형상의 틀 안에 가공 소재를 넣고 힘을 가해서 부품·제품을 만드는 뿌리기술입니다. 이미 2001년 가좌동 주물연구부에 파견 형태로 나와 있었죠.
▲송도국제도시 개발 초창기였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뿌리기술연구소와 인천테크노파크 건물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매립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근방에 아무것도 없었죠.(웃음) 송도국제도시는 경제자유구역이자 항공·해운 등 산업에 필수적인 무역 관문입니다. 국내 혁신 기업들의 R&D 센터뿐 아니라 해외 기업·기관 유치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뿌리기술연구소가 기능을 수행하는 데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봅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현주소를 어떻게 보십니까.
-바이오 기업들이 들어선 인천에선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전체 의약품 수출액의 42%가 생산됐습니다. 그러나 의약품 생산을 위한 바이오 공정 장비와 일회성 소모품들은 거의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고, 바이오산업 공급망 생태계는 미흡한 상황입니다. 대기업 유치는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수요 기업 주변에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공급하는 제조기업이 성장하면서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 때문이죠. 다만 지역 뿌리기업이 첨단산업 분야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합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것만으로 제조기업이 전방 수요기업 공급망에 진입할 수는 없습니다. 소부장 개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이오나 반도체 등 인천 주력 산업 분야에서 뿌리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첨단산업이 유치되는 경제자유구역과 원도심 산업단지가 시너지도 내야 할 텐데요.
-경제자유구역에선 바이오·반도체·로봇·항공 등의 산업이 육성되고 있습니다. 기존 산단과 시너지를 위해선 국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의 본사 내지는 R&D 센터를 유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동·부평·주안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경제자유구역 산업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업종 전환이 준비돼야 하는 것이죠. 관련 산업 분야에 관한 부품화 기술 개발도 선행돼야 합니다. 올해 뿌리기술연구소는 인천시·인천테크노파크·인하대 등과 반도체 후공정 공급망 기업 육성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소부장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연구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민간 수탁 연구 과제를 진행한다는 점도 흥미롭네요.
-KITECH 전체 예산 가운데 민간 수탁 과제를 통한 사업비가 8% 정도 됩니다. 특히 뿌리기술 연구소는 현대자동차, LG전자, 현대제철 등의 기업으로부터 총 106개 수탁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과거에는 국내 기업이 돈을 내고 기술을 개발하는 사례가 드물었습니다. 기술은 어깨너머로, 공짜로 배우는 거라는 인식이 많았죠. 이제 기업이 스스로 필요한 기술은 투자해서라도 시급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혁신 뿌리기업이 신기술 개발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투자 리스크를 분담하는 것도 뿌리기술연구소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기술은 적기를 놓치면, 나중에 개발하더라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있어도 공급망에 속한 부품 업체들은 방향을 모르면 미래를 위한 투자 자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대중소 상생'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기업이 기술 방향이라도 공유해서 중소·중견기업이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실패'를 하게 만드는 토양이 갖춰져야겠죠.
▲뿌리기술 활성화를 위해 인천경제자유구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신다면.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산업적인 측면, 또 국제화에서도 아직도 '과정 중'에 있습니다. 완성형은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자유구역 특성을 살리는 도전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국내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거점별로 홍보와 교섭을 시도하면 투자 저변을 다질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기업들이 오지 않거든요. 특히 글로벌 기업과 해외 대학 유치가 중요합니다. 해외 기업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설립 과정에 혜택을 주고, 인천 중소·중견 제조기업과 공동 기술을 개발하게끔 지원하는 융통성 있는 정책도 필요합니다. 기술 투자를 헛되이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로 성공적 사례를 얻을 수 있다면 경제자유구역뿐 아니라 인천 전체 산업 생태계 전환 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대담 신용석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국제협력특보
/정리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중소 중견기업 육성...뿌리기술연구소 첫 분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은 생산 기술 연구개발(R&D)과 실용화 기술 지원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는 기관이다. 1989년 설립해 충남 천안에 위치한 KITECH는 전국에 3개(뿌리기술·융합기술·청정기술) 연구소와 7개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2004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문을 연 뿌리기술연구소(당시 생산기반기술본부)는 KITECH의 첫 번째 분원이다. 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6대 뿌리기술에 특화한 연구 조직으로 출발했다.
뿌리기술연구소 연구 범위는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기존 6대 공정기술에서 14대 핵심 뿌리기술까지 확장됐다. 제조업의 4차 산업혁명 적응과 신시장 창출을 목적으로 정밀가공, 엔지니어링 설계, 로봇, 센서 등의 기술이 추가됐다.
뿌리기술은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으로 일컬어진다. 자동차 1대를 생산할 때 뿌리기술 관련 부품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300여개 업체에도 19개 뿌리기업이 포함됐다. 전기차·반도체 등 주력 수출 품목에도 뿌리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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