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야구 이야기가 나오면 어렸을 때 웃터골에서 애를 태워가면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한용단(漢勇團)의 믿음직한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한용단이 유명했던 것은 야구를 잘한다고만 해서가 아니었다. 그간 쌓이고 쌓였던 일인(日人)에 대한 원한과 울분을 한때나마 야구경기를 통해서 발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용단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까지 열병에 들뜬 것처럼 웃터골로 모였다.”

고(故) 신태범 박사가 회고하는 한용단의 야구경기 장면이다. 웃터골은 지금 제물포고교가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1920년 인천부에서 지은 공설운동장이었다. 한용단은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를 주축으로 조직된 야구팀이다. 한용단과 일본팀이 겨루는 결승전은 정말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불꽃 튀는 격렬한 한-일 대항전으로 치르는 경기마다 앞을 다투어 모여든 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4년 한용단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게 되는데, 충돌 사고에서 비롯됐다. 억울한 심판 판정으로 일본팀에 져서 한용단이 우승을 놓쳤다고 격분한 응원 군중이 본부석으로 몰려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개항과 더불어 인천에 상륙한 야구. 들어오자마자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끈 인천 야구는 1919년 11월13일 토종 조선인으로만 구성된 청년체육단체에부터 출발했다. 그 중심엔 한용단이 있었고, 이들의 열정적인 시합은 억압된 민중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데 한몫 톡톡히 했다. 인천시민들의 자랑이자 희망인 한용단은 일본의 농간으로 결국 사라졌지만, '구도(球都) 인천'과 우리나라 야구사의 맥을 잇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고교야구에서부터 프로야구에 이르기까지 '야구 도시 인천'의 진가를 제대로 알렸던 '원조'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용단은 팀을 꾸릴 당시엔 야구 복장이나 용품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등 미약했지만, 나중엔 그야말로 창대한 결실을 거둔 셈이다.

이렇듯 과거 화려한 시절을 구가했던 한용단이 창작 뮤지컬로 부활해 눈길을 끌었다. 극단 십년후가 '풀 카운트'를 11월3일 오후 트라이보울에서 올렸다. 이번 뮤지컬에선 한용단의 창단부터 해체까지 걸어온 여정을 소개했다. 스포츠로 일제에 저항하고, 인천시민들의 영웅이었던 한용단의 역사적 의미를 훑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지금도 많은 야구 선수가 '구도 인천'의 전통을 잇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래도 거기엔 야구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팬들이 존재함을 잊어선 안 될 터이다. 한용단을 열렬히 응원했던 일제시대 관중처럼 그들 또한 매우 소중하지 않은가.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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