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는 공심채라는 식물 줄기를 플라스틱 빨대 대용으로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말 그대로 가운데[心]가 빈[空] 채소[菜]인 덕이다. 수원화성 공심돈을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국내에서는 태국식 공심채 볶음으로 제법 소문이 났다. 공심채는 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우리네 김치처럼 먹는 채소라고 한다. 빈 줄기 속으로 양념이 잘 배기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게 공심채 애호가들의 칭찬이다. 동남아 출신 이주민들에게 공심채 요리는 꿈에도 못 잊을 고향 음식일 게다.
아시아로컬푸드복지협동조합과 김포시아열대작목회가 '아작'이라는 농산물 브랜드를 지난 7월 출시했다. '아작'은 아열대 작물(과일과 채소)의 줄임말이다. 공심채가 대표 채소이고, 서남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머스크가지, 인디언 시금치라 불리는 황궁채, '줄콩'이라는 별칭을 가진 롱빈 등이 '아작' 작목 목록이다. '아작'은 결혼이주여성, 난민, 이주노동자 등 이주정착자와 김포 농민이 함께 재배했다. 지난 2019년부터 몇 년간 시행착오 끝에 시장 출하까지 성공시켰다.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민은 2008년 100만명이 넘어섰고, 2020년에는 213만명으로 집계되었다. 사람이 왔으니 이들의 고향 음식이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 하여, 10여년 전부터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아열대 작목 재배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게다가 한국도 아열대 식물이 잘 자랄 만큼 기후변화가 빠르기도 하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사는 수도권 김포에 '아작' 작목반을 발 빠르게 구성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콜럼버스가 15세기 말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옥수수 토마토 감자 고구마 바닐라 카카오 담배는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밀 쌀 양파 사탕수수 커피는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미국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스비는 1960년대 후반 신·구대륙 사이에 벌어진 사람과 문명의 상호이동을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이름 붙였다. '콜럼버스의 교환'이 없었더라면 세계사는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게도, 우리는 상당한 먹을거리를 맛도 보지 못했을 터이다.
그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김포 '아작'은 한국문화사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는 확실한 징표 가운데 하나다. 아시아로컬푸드복지협동조합 조종술 이사장은 '아작' 출하에 대해 “농업 분야에 작은 숨통 하나 통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며 겸손해했다. 그러나 그 의미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 '아작'의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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