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사진=EPA, 연합뉴스

공연 중 무대에서 내려와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다는 이유로 성악가를 때린 유명 지휘자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명 지휘자인 80대 존 엘리엇 가디너는 지난 22일 프랑스 이제르주 라 코트 생 앙드레에서 열린 베를리오즈 페스티벌 공연 중 20대 성악가 윌리엄 토머스를 때렸다.

이에 대해 격렬한 비난이 일자 그는 유럽 투어의 남은 공연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가디너는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의 1막과 2막이 끝난 후 토머스가 무대에서 내려와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다는 이유로 그를 백스테이지에서 때렸다.

가디너가 토마스를 때린 사실이 알려지자 이내 큰 논란이 일었고, 가디너는 다음 날 공연에 불참한 채 갑자기 런던으로 가 주치의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토머스는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아 수요일 공연에 예정대로 출연했다.

가디너는 성명을 통해 "베를리오즈 페스티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깊이 후회하며 공연 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은 것에 대해 전적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그는 "내 행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윌 토머스에게 사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로 불쾌했을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가디너는 또 "신체적 폭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음악가들은 언제나 안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며 "내가 내 행동을 돌아볼 동안 여러분의 인내와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디너는 앞으로 자신이 설립한 몬테베르디 합창단, 낭만과 혁명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기로 예정된 유럽 투어의 나머지 공연에서도 모두 하차한다고 밝혔다.

가디너로부터 폭행 당한 토머스의 소속사 측은 토머스는 앞으로 예정된 여러 페스티벌에 예정대로 참가할 것이며 이번 사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모든 음악가는 학대나 신체적 손해가 없는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일갈했다.

가디너가 하차함에 따라 남은 투어 일정은 몬테베르디 합창단·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인 디니스 수사가 맡게 된다.

몬테베르디 합창단·오케스트라는 "22일 저녁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다"며 "존중과 포용은 우리의 근본 가치이며 연주자들과 직원의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가디너는 바로크 음악을 당 시대의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는 역사주의 음악의 대가로 평생 바흐의 음악을 연구한 음악가이자 영국 출신 지휘자다.

그는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낭만과 혁명 오케스트라, 실내악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트를 창설했고, 1990년대에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모차르트의 주요 오페라를 녹음한 앨범을 발표했다.

2000년에는 바흐 서거 250주년을 맞아 각국 교회와 성당에서 바흐의 칸타타를 녹음하는 완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지난 5월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 지휘를 맡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가디너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2010년 인터뷰에서 "나는 참을성이 없고 짜증을 잘 내지만 소문만큼 악랄하게 행동하진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구조는 비민주적이다"고 짚으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인 바 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