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바다에 어허얼사 돈 바람 분다∼” 경기민요 '군밤타령'의 첫머리 가사를 바꿔 부른 곡이다. 군밤을 주제로 한 노래인데, 뜬금없이 '돈 바람'을 얘기할 만큼 연평도가 호시절을 구가했음을 노래한다. 연평도는 1960년대까지 조기잡이 황금어장이었다. 4~6월 조기철이면 파시가 열려 선원 수만 명이 몰려왔다. 엄청난 현금을 주고받으며 '돈주머니를 베고 자고,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돌아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1960년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연평 파시'가 실렸을 만큼 이름을 알렸다.

1960년대 조기철만 되면 인천지역 집집마다 조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동네에서 조기를 짝으로 사다가 나눠 밥반찬으로 내놓았다. 그 내음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 한몫을 차지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왕성했던 '연평 파시'는 1968년 5월을 마지막으로 더는 열리지 않는다. 무리한 조업 활동에다 바다 환경 변화 등으로 조기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아서다. 그 대신 요즘 연평 어장은 단연 꽃게로 유명세를 떨친다.

이처럼 씨를 말렸던 연평도 조기가 회귀할 조짐을 보여 관심을 끈다. 옹진수협에 따르면 인천지역 연도별 참조기 위판량(총 거래액)은 2018년 7짝(180만2500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 174짝(940만원), 2020년 1763짝(1억6620만7000원), 2021년 5087짝(3억3376만5000원), 2022년 2381짝(2억6351만9000원)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연평어장에서 잡히는 참조기가 어민들에게 반가운 까닭이다.

그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정부가 2019년부터 서해 5도 어장을 확장한 요인도 있지만, 인천시 산하 수산자원연구소가 수산 자원 회복을 위해 2012년부터 올해까지 300만 마리 이상의 어린 참조기를 연평도 해역에 풀어넣은 덕분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시는 올해도 어린 참조기 25만 마리를 방류했다. 시 수산자원연구소가 국립 제주수산연구소에서 수정란을 분양받아 올해 5월부터 80일 가량 사육한 어린 참조기다. 감정기관 전염병 검사를 거쳐 건강하다고 판정된 9㎝의 우량종자다.

누구나 알 수 있듯, 해양 생태계 변화는 곧 우리 밥상 미래와 직결된다. 많이 잡힌다고 해서 남획으로 이어지면 곧 씨를 말린다는 걸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싶다. '조기 한 바가지, 물 한 바가지' 시절의 연평어장 추억이 회상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기가 다시 많이 잡혀 어민들의 주소득원으로 자리를 잡길 기대한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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