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가 겪은 고초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1960∼70년대 우리가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독일로 건너가 외화 벌이에 힘을 쏟은 이들의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들이 고국에 송금한 돈은 약 1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한국 총 수출액의 2%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 패망을 극복하고 경제 부흥에 성공한 독일은 경제 성장과 함께 탄광·의료·요양 등의 분야에 외국인 노동력 유입을 필요로 했다. 같은 시기에 한국은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 중이었고, 외화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서로 원하는 바를 맞춰 1961년 두 나라는 경제기술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기술협력과 차관 공여, 광부·간호 인력 파견 등에 합의했다.
한독협정 이후 1963년 12월22일 독일에 처음 도착한 광부는 123명으로, 1977년까지 7936명에 달했다. 곧 이어 간호 여성들이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록을 보면, 1976년 간호사 독일 파견이 공식 중단될 때까지 한국 여성 1만여명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이 중 수천명이 간호사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광부들은 막장에서 탄을 캐느라 생사를 넘나들었고, 간호사들은 거구의 독일인을 상대로 주사·투약·간병 업무를 하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다. 독일이란 낯선 나라에 한인 사회의 기틀을 닦은 이들이 바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다. 독일로 떠날 무렵 20~30대로 젊었던 그들은 어느덧 고희를 넘긴 반백의 모습으로 독일 교민 1세대를 이룬다.
재외동포청을 출범시킨 인천에서 파독 광부·간호사 60주년 행사가 열린다. 하늘도시축제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8월11∼14일 송산공원에서 '2023 영종국제맥주축제'를 진행한다. 파독 광부·간호사 시절, 일을 마친 뒤 마셨던 맥주를 바탕으로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거친 삶을 일궈낸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을 조명하는 뜻깊은 시간이다. 여기선 파독 광부와 간호사 30여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공연을 벌이고, 독일 파견 때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의 자료와 소장품도 전시한다. 60년 전 현지 독일 맥주도 선보인다.
인천은 이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품고 있기도 하다. 재외동포들의 삶을 톺아볼 재외동포청을 안고 있는 데다 영종도에 유럽한인문화타운을 조성할 예정이어서다. 인천시는 재외동포들에게 '제2의 고향'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온힘을 쏟겠다고 밝힌 상태다. 시민들이 행사를 계기로 과거 치열한 삶을 살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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