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실종이 민생위기 초래”
“민주당, 중도층 지지 노력해야”
국민 눈높이 맞춤 정치개혁 강조
“지방 분권 실종이 민생 위기를 부르고 있다.”
지난 22일 수원 광교 경기도청에서 만난 염태영(62) 경기도 경제부지사는 민생현장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대표적인 지방분권론자로 불리는 염 부지사는 3선 수원특례시장, 지자체장 최초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분권형 개헌은 그의 정치적 소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정치 상황을 보면 암울하다고 한다.
“지방 분권 어젠다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중앙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지방의회마저 진영논리만 앞세운 국회를 닮아가고 있다. 사회 갈등의 진원지가 된 정치권의 극단적 진영 대립으로 양극화, 사회적 갈등 해결이라는 정치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사회 현안의 해결점 찾지 못하면서 민생해결을 위한 골든타임마저 놓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권의 불신으로 비롯된 민생위기'라고 꼬집어 말한다.
“신뢰를 잃은 정치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만약에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한다면 의사가 처방한 약을 삼킬 수 있을까? 정치인은 국민에게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이다. 때로는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 같은 정책을 제시해 국민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국민의 마음속에 '저 정치인은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노력하고 있다'라는 믿음이 깔려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은 정치인이 하는 모든 주장의 저의를 의심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신과 자당의 선거 승리, 혹은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노림수가 아닐까 의심한다.”
▲민주당은 신뢰회복으로 살길 찾아야
염 부지사는 정치개혁을 위해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당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당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주당은) 어디서부터 국민적 신뢰의 균열이 가기 시작했는지 들여다보는 게 첫 스텝이다. 원인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제대로 내릴 수 있다. 보여주기식 미봉책으로는 더 이상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없다. 지난 조국사태 이후, 최근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까지 민주당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마다 국민의 일반 정서와 점점 멀어지는 선택만을 해왔다. 그때마다 핵심 지지층은 국민적 질타를 '2찍'이라 매도하고, 내부의 비판을 '수박'이라 조리돌림하며 그런 당의 선택을 비호했다. 중도층 지지를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는 민주당에게 담대한 구상과 실행력을 보여줘야 현재 당이 처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철퇴를 맞은 후 '탄핵의 강'을 건넜다. '광주 사과'한 30대 이준석을 당대표로 당선시켰고, 결국 자당 대통령을 수사해 법정에 세운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선택, 민주당 보다 역동적인 모습 보고 국민이 표를 주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 있다.”
▲분권형 개헌의 불을 살려야
그는 사그라지고 있는 '분권형 개헌'의 불을 살려야 한다고도 했다.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 양상도 훨씬 다변화하는 추세로 가고 있는데 우리 행정의 대처 속도는 너무 느리고 획일적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화성시 경우, 지난 7년 동안 30만 명이 증가했다. 당연히 행정 수요가 폭발했지만, 화성시는 그에 대응하는 신규 공무원 증원을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준인건비 제도' 때문이다. 행안부가 지방정부 별로 공무원 인건비 총액을 산정해 매년 통보하는 제도로 정부가 제시한 인건비 총액 초과하면 지방교부세 감액 페널티를 받는다. 더 놀라운 건 행안부의 기준인건비 산정방식이 비공개여서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결정되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그는 분권형 국가를 위한 정책 대안의 사례로 데이터 분권을 이야기한다.
“중앙부처가 생산하는 데이터를 지방 정부들이 각종 지역 정책 수립하는데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건강보험, 국세청 등이 보유하고 있는 건강, 납세 관련 자료들을 활용하면 훨씬 정교하면서도 실용적인 정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가 곧 권력이 되었다. 데이터 분권 역시 분권형 국가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지방분권을 위한 국정운영 재정비 필요
윤석열 정부에서 분권형 정치개혁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염 부지사는 “윤석열 정부는 지방 분권의 이해도 낮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지난 3월 정부는 난방비를 보편지급하는 지방 정부에게 지급하는 보통교부세를 감액한다고 발표했다.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 때문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자치분권에 대한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정말로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염려한다면 무분별하게 내리꽂는 국고보조사업부터 정비하는 게 순서다, 이제라도 중앙정부는 지방행정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의 방향을 재정비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개혁 필요
염 부지사는 정치 개혁의 기준은 '국민 눈높이'라고 강조한다. 특정 세력 또는 팬덤 중심이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국제정세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가의 명운이 '기술 우위'에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패권전이 치열하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정치권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상대방 실수로 점수 따는 정치만 하고 있다. 586 세대가 청년이었던 시기와 달리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 양상도 더욱 다변화됐다. 과거 민주화 운동 당시의 단순한 선악 구도로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그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찾아내는 혜안을 갖춘 실력자들이 정치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결국 정당 개혁이다. '대의원제 폐지' 는 번지수가 틀렸을 뿐 아니라 개혁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그들만의 리그'로서의 여의도 정치가 아닌, 국민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홍성수 기자 ssho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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