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인천 차이나타운, 1884년 화교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이곳은 한국에 들어온 가장 오래된 타 문화의 중심지죠.

짜장면·만두 등 널리 알려진 먹거리 외에도 중국 전통 공연을 꾸준히 열고 있는 이들이 있어 만나봤습니다.

▲ 왕미준 단장(사진 오른쪽)과 10대 의선단 단원이 함께 불산 사자탈을 들고 선 모습. 왕미준 단장은 단원들과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만큼 공연을 할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중국 사자춤 제일 잘 춰요"

우리나라에는 매년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날 사자로 꾸민 사람들이 집집이 다니며 잡귀를 쫓고 복을 빌어주는 민속인 사자춤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나무나 대광주리에 종이를 바르고 다양하게 꾸민 사자 머리를 든 채 풍물패를 앞세워 마을을 돌아다녔는데요. 정월 대보름 밤 이 사자가 마당에서 방, 그리고 부엌·곳간 등을 다니면 사자가 내는 방울 소리에 귀신이 놀라 달아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린아이를 사자 등에 올려놓으면 아프지 않고 잘 자라 무병장수하고, 사자 털을 베어 집에 두면 태평을 누린다고 믿었다네요. 과거 동아시아 공연문화 교류의 증거이기도 한 이 사자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현재까지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 사자춤은 한국 사자춤과 음악, 춤 구성, 탈 모양 등이 다른데요. 우리나라의 유일한 중국전통공연단이자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의선중국전통공연단(의선단)은 다양한 중국 사자춤 가운데 불산 사자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의선단의 단장인 왕미준 씨는 "불산 사자춤은 한국 사자춤과 달리 크고 빠른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동작을 선보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왕 단장은 "기본적으로 자세가 낮은 대신 움직임이 큰 불산 사자춤이 좀 더 (중국) 전통에 가깝다"고 소개했습니다.

 

6년간 유학 생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

어렸을 때 쿵후를 배우다 자연스레 사자춤도 접하게 됐다는 왕 단장은 사자춤 매력에 빠져 유학을 떠날 정도로 배움에 진심이었습니다. 중국 사자춤을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대만으로 유학을 떠난 왕 단장은 그곳에서 무려 6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타이중 국립교육 대학교에서 민속 체육을 전공하는 동시에 현지 공연단을 따라 다니며 공연 기술을 연마했다고 했는데요. 사자춤뿐만 아니라 용춤, 변검, 경극, 중국 난타, 공죽(중국식 요요) 등 공연단이 선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습득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변검의 경우 공연 기술 전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폐쇄성을 지닌 데다 오랜 기간 수련이 필요한 고난도 기예 기술이다 보니 배울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았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 사부님을 찾아내는 열정과 배움에 대한 열의로 공연을 선보일 정도의 기량을 쌓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배경 음악도 없이 즉흥에서 이뤄진 공연이었지만 가면뿐 아니라 왕 단장이 선보이는 동작의 화려함과 유려함에 4분 남짓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이것은 마술인가 예술인가…?'

왕미준 단장이 선보이는 또 다른 장기인 변검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중국의 전통극 중 하나입니다. 변검은 무대에 선 배우가 눈 깜빡할 사이에 얼굴의 가면을 바꿔 탄성을 자아내는데요. 마치 마술처럼 짧은 시간에 가면이 바뀌다 보니 보통 공연에서 사용되는 가면의 종류만 흔히 2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가면에 따라 배우의 몸짓 역시 달라져 한층 더 몰입감을 자아냅니다.

사실 왕 단장의 시범 공연이 펼쳐지기 전, 무대도 아닌 데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카메라를 설치했기에 기법(트릭)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감히 했었습니다. (마술 공연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는, 멋없는 관객처럼 말이죠.) 그런데 카메라 앵글로 한 발 한 발 내디뎌 들어오는 왕 단장이 등장한 순간 주변은 그대로 암전되고 그의 몸짓과 연기만이 남았습니다.

 

▲ 인터뷰 중인 의선중국전통공연단 단장 왕미준 씨.

아직 1년도 안 된 공연단이라 그런지 공연이 끝나고

관객분들이 박수를 쳐 주실 때마다 가슴이 벅찹니다.

한국에서 유일무이하고, 또 제일 잘 추는 중국 사자춤 보여드릴 테니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공연단으로 성장해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 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은 왕 단장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단원과 함께 부지런히 장비를 정리하고 훈련에 나섰습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채나연 기자 ny1234@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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