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쯤 바람에 흔들리는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TV 화면에는 배의 모습과 성난 바다 위로 "탑승객 전원 구조"라는 뉴스 속보 자막이 떴습니다.

다행이라는 탄성이 터져 나온 지 채 몇 분도 흐르지 않아 이는 오보로 드러났고, 결국 그곳에서 304명의 희생자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 세월호 선체가 보존된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 철제부두에 노란색 추모 리본이 묶여 있다. /사진=연합뉴스<br>
▲ 세월호 선체가 보존된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 철제부두에 노란색 추모 리본이 묶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둔 지난 9일 희생자 가족, 그리고 생존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고 해역서 추모식을 열었습니다.

'세월호'라고 적힌 노란 부표가 떠 있는 그곳, 1500t급 해양경찰 경비함정을 타고 뱃길로 꼬박 3시간을 달려 도착했습니다.

모두의 시야에 침몰 지점이 들어온 순간 수많은 슬픔은 한데 모여 침묵이 되었죠.

작고 노란 부표를 띄운 채 잠잠한 바다처럼 경비함정엔 커다란 오열 대신 얼얼한 눈물이 가득 찼습니다.

▲ 세월호 선체가 보존된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 철제부두에 노란색 추모 리본이 묶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통스럽고 죄스러워 발걸음 하기 어려워도

아이들이 아프고 무서운 기억 지우고

하늘에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왔습니다.

-지난 9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

 

다시 돌아온 아홉 번째 봄, 그 사이 누군가는 원래 없었던 일처럼 감쪽같이 지워지길 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수사 진행을 방해하고 나아가 은폐에만 급급했던 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100여 분 동안 기울어지며 끝끝내 뒤집히던 그 순간까지, 초동 구조 조치에 실패했던 해경에게도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통탄에 빠진 유가족들의 안위를 살폈어야 할 국가는 불법 사찰을 벌였고, 법원은 이를 분명히 국가의 폭력 행위라 규정했지만,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참모장들은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존재하고 있는 사실에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표지 이미지. /사진=다른 제공
▲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표지 이미지. /사진=다른 제공

저는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다음 세대인 아이들도, 더 성장해 나갈 저의 세대 사람들도

우리 앞에 벌어진 참사에 두 눈을 뜨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남겨진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많은 노력을 할 거예요.

부디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생각을 멈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저자 유가영 씨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9년 동안 살아낸 저자 유가영 씨는 '생존 학생'이었습니다.

참사가 남긴 상처와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더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날의 일을, 그만의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으로 가닿을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하길 꿈꾸는 청년으로 자라났습니다.

이렇게 또 한 번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br data-cke-eol=">
▲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이 연극의 가장 좋은 점은 우리 아이들은 제주도에 도착을 못 했지만, 이 장기자랑 안에서는 모든 아이가 다 같이 제주도에 도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중 

다큐멘터리 속 배우들이 준비하는 연극 '장기자랑'은 곧 떠나게 되는 수학 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짐작하다시피 연극 속 역할은 바로 세월호로 떠난 아이들을, 그리고 배우들의 정체는 그 엄마들입니다.

무대 위에서 '아이들이 다 어디 갔지?'라는 연극 대사가 나오고 곧바로 이어지는 익숙한 팽목항의 모습에, 그리고 아이들이 끝내 밟지 못했던 제주 바닷가에 배우들이자 엄마들이 등장한 순간, 큰 숨을 들이켜게 됩니다.

수없이 통곡하고 호소하고 절규하는 모습만이 노출됐던 그들이기에 으레 '그들은 그런 사람'이라 치부했던 무지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편견을 앵글 속에서 태연하고 명쾌하게 깨부숩니다.

다큐멘터리는 배우들을 통해 상대가 원하는 걸 봐주는 게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을, 원치 않는 데 보는 건 그저 오지랖과 폭력일 뿐이라는 걸 짚어냅니다.

 

"가만히 있으세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가만히 계세요." (세월호 참사 당시 선내 안내 방송 일부)

실효적인 조사권을 갖지 못해 명확한 법적 한계가 그어진 채로 출범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끝내 세월호 침몰 원인을 규명해내지 못한 채 지난해 활동을 마쳐야 했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가 다신 그와 같은 참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정부에 제안했던 권고안도 이행되지 않고 있죠.

그럼에도 어느새 떠난 이를 슬퍼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이내 하나의 나무로 자라고 마는 연리지처럼 특별해지고 단단해져 갑니다.

우리가 움직였던 그 시간은 과연 충분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이 세상에 충분한 애도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아홉 번째 봄입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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