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지난 2018년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특별전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계엄선포 문서 원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연합뉴스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의 무리로 인정해 총살하겠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컸던 참극의 사건은 7년여간에 걸쳐 지속됐습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3·1 사건에 대한 항의가 도화선이 돼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로 이어진 제주 4·3은 초기엔 미군정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이승만 정권이 군경을 동원해 무장대 토벌에 나섰습니다.

극렬한 충돌 속 당시 그곳 인구 십 분의 일인 3만여 명(정부 진상조사 보고서 추정치)의 목숨을 앗아가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 심사해 확정한 희생자 현황(2020년 기준 14,532명)에 따르면 10대 이하 어린이 5.4%(770명)와 61세 이상 노인 6.3%(901명)가 전체 희생자의 11.7%를 차지, 여성의 희생이 21.1%(2990명)로 컸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과격한 진압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의 마을을 폐허로, 잃어버렸습니다.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계엄 선포)은 해제됐지만 살아남은 자들에겐, 그리고 유가족들에겐 서슬 퍼런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이 다시금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폐허가 된 마을과 마음을 제대로 추스를 틈은 없었습니다.

고문 피해로 인한 후유장해, 이념 충돌 속 영문도 모른 채 찍힌 '붉은 섬 주민'이란 낙인에 대한 고통은 수십 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꺼낼 수 있었습니다.

▲ 지난달 28일 문재인 전 대통령 SNS인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캡처.

"임기 내내 제주 4·3과 함께해 왔던 것이 큰 보람"이라 말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더는 이념이 그 상처를 헤집지 않길 바란다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억울한 죽음과 상실의 삶을 견디는 가족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언급하며 제주 4·3의 완전한 치유와 안식을 빌었는데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소설가인 경하, 경하의 친구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인선,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까지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어느 겨울 인선이 손가락 절단 사고로 입원하게 돼 경하가 인선의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고, 경하가 그곳에서 제주 4·3사건의 생존자인 정심의 지난 시간들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죠.

문 전 대통령은 쉼 없이 계속되는 통증이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을 선택한 등장 인물처럼, 불편하고 괴로워도 끝내 마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곱씹게 하는 이 소설같이 제주 4·3이 그럼에도 기억되길 바란 듯합니다.

▲ 지난 2021년 제73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사진=연합뉴스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무려 21년 만인 지난 2021년 2월,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보상과 불법 군사재판 수형자 명예회복을 위한 직권 재심 규정이 포함된 4·3 특별법 개정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를 21대 국회의 가장 큰 성과라 힘주어 말할 정도로 '제주의 봄'에 진심이었는데요.

4·3 희생자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공식 선포된 이후 처음으로 2018년 현직 대통령으로서 직접 참석한 바 있습니다.

이후 임기 중에도 추념식(2020·2021년)에 꾸준히 참석해 매번 유족들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추념사로 깊은 위로와 울림을 건넸죠.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전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2018년)"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합니다. 4·3의 해결은 결코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웃의 아픔과 공감하고 사랑을 존중하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인간적인 태도의 문제입니다. (2020년)"

 

"4·3에는 두 개의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 담긴 역사이며, 평화와 인권을 향한 회복과 상생의 역사입니다. 이번 4·3 특별법의 개정 역시 4·3을 역사의 제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해 모든 산 자들이 서로 손을 잡았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제주도에 완전한 봄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서로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읍시다. (2021년)"

 

올해 4·3 추념일 당일엔 퇴임한 문 전 대통령이 2년 만에 직접 제주를 찾을 것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


*참고자료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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