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日 유학생,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제국대학 유학 1000여명의 삶
일제 부역…조국서 부 쌓기도
목숨도 내놓은 민족주의자도
해방 후 조국 건설 '중추' 역할
▲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 392쪽, 2만원

이맘때 민족애가 폭발한다. 해방된 조국, 살아냈고 버텼기에 104주년 3.1절을 맞은 이 날이 더 뜻깊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정종현 교수가 쓴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당시 최고의 엘리트로, 일제에 부역하거나 할 수밖에 없던 그들의 궤적을 담았다.

대한제국을 군홧발로 짓이긴 일제, 10년간 서슬 퍼런 무단통치로 민족을 억압했다. 그리고 1919년 3.1 만세운동은 일제의 통치 수단을 바꿨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교묘한 술수를 썼다. 1920년대부터는 문화통치 시기라 부른다.

이때부터 일제는 본토로 유학의 길을 터준다. 제국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도쿄, 교토, 나고야 등에 설치됐다. 서울에는 1926년 경성제국대학이 개교했다. 일제는 경성제국대학을 통해 민족 대학 설립을 방해할 목적 또한 컸다.

이 책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국대학 유학길에 오른 1000여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에 가게 된 배경과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들의 유학생 삶은 어떠했는지 등이 담겨 있다.

정종현은 이들을 가치 판단하지 않는다.

조선의 일본 유학생은 모두가 돈이 많지 않았다. 국가 장학생으로, 때론 개인의 후원과 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학비를 해결했어도, 생활비가 없어 과외 등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하숙집조차 구할 수 없는 유학생도 많았다.

식민 조국의 유학생은 감시까지 받았다. 그들은 제국대학 입학 전 일본의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동포애를 품었다.

하지만 가장 순수하고, 감성이 풍부했을 그 시절, 일제의 고등교육과 일제의 문화, 사상 등을 십여년간 받아들였기에 자연스레 '일제화'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그렇게 고등판무관 등 고위직으로 일제에 부역하거나, 친일과 반일 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로 부를 쌓았다. 갈등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유학생도 있다.

시인 윤동주의 고종사촌으로 교토제국대학을 다닌 송몽규, 그는 독립운동이 적발돼 윤동주와 같이 해방을 불과 5개월 앞둔 1945년 3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목숨을 잃는다. 친일의 거목 육당 최남선의 아들 최한검은 도쿄제국대학에서부터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고, 해방 후 좌익 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도 이들은 조국 건설의 중추 신경이 됐다.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는 1945년 12월17일 조선총독부 고등문관 출신 70여명으로 조직된 '행정연구위원회'를 구성했다.

신익희는 “애국이니 구국이니 하며 왜적과는 타협하지 않고 왜놈잡이 하겠다고 천방지축 돌아다니던 사람들, 그러니까 나부터도 행정에 대한 능력과 수완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비록 여러분은 일제의 폭정 아래서 자신의 명맥과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조금 친절을 왜인에게 표시했다 하더라도 해방된 조국에 헌신 노력하여 건국의 기초와 공로를 세움으로써 지난날의 약간의 과오는 속죄되는 것이니,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응수 노력하길 부탁드립니다”(p 237)라며 이들을 독려했다. 해방된 조국은 행정연구위원회를 통해 국토계획, 행정조직, 법제, 재정, 보안 등 총 19개 전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기초를 '제국대학의 조센징'이 세운 것이다.

죽산 조봉암에 대한 사법살인 때는 더 구구절절하다. 1959년 2월27일 진보당 사건 최종 판결장,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강령을 기초한 이동화도 피고로 함께 했다. 이동화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왔고, 법관 석에 앉은 변옥주 대법관은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렇게 해방 전과 해방 후, 이들 삶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었다. 권력의 주구가 될 것이냐. 민족주의자가 될 것이냐.

정종현은 동국대에서 <식민지 후반기 한국 문학에 나타난 동양론 연구>로 200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1년간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수를 한 후 현재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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