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M 신차 미배정·경제난
현 생산 차종 단종 이후 운영 중단
노동자 전환 배치 반발 여론 비등
협력업체·파견직 문제 해결 요원
“상생협의체 꾸려 지속 방안 마련”
▲ 한국GM 부평공장 전경./인천일보DB

한국GM 부평2공장이 오는 26일 문을 닫는다. 글로벌GM이 부평2공장에 신차 배정을 하지 않은 상황에 경제난까지 겹치며 고정비 감축을 위해 운영 중단이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분간 전기차 생산 여부는 알 수 없고, 협력업체와 파견 노동자 등의 대책은 들리지 않고 있다.

한국GM은 최근 트랙스와 말리부 차량이 단종됨에 따라 부평2공장을 오는 26일 생산 종료와 함께 폐쇄한다고 23일 밝혔다.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한국GM 부평공장은 대한민국 자동차 생산의 요람으로, 1986년 부평1공장이 새롭게 조성되며 부평2공장은 기존 설비로 채워졌다. 부평2공장에서는 1990년대까지 대우의 로얄 시리즈와 프린스, 에스페로에 이어 레간자·매그너스·토스카 등이 중형 세단이 생산됐다. 하지만 IMF로 2002년 GM대우가 출범했고, 2011년 사명이 한국GM으로 바뀌었다. 차량 엠블럼도 쉐보레로 교체됬다.

부평2공장은 금융 위기를 어렵게 버티며 9세대 신형 말리부 생산으로 반짝 상승했지만, 후속 모델 등 신차 생산을 하지 못했다.

한국GM은 부평2공장을 폐쇄하지만 부평1공장에서 생산 중인 트레일블레이저와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CUV(크로스 오버 자동차)에 집중할 방침으로, 두 차량을 통해 국내 판매와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부평2공장 폐쇄로 인한 노동자 전환 배치와 협력업체, 파견 노동자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인천시와 회사 측에 따르면 부평2공장에서 일하던 1200여명의 노동자는 부평1공장 500명, 창원공장 700명씩 전환 배치된다. 전환 배치 반발 여론이 시와 사내 노동조합 등에 전달되고 있다.

특히 부평2공장과 직접 연관된 인천지역 협력업체 등의 타격 등도 관심이다.

시가 파악한 부평공장 관련 지역 협력업체는 약 628곳. 이 중 100% 연관된 중소기업은 30∼4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약 200곳 이상의 협력업체가 포함되는 것으로 1차 협력사는 52곳으로 집계됐다.

한국GM이 부평2공장 등의 향후 전기차 생산 등 미래차와 관련한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 상황에, 시는 미래차 생산 가능성과 업체들의 안정적 전환을 위해 올해 말까지 관련 실태조사 등을 벌인다. 시는 또 오는 2024년까지 청라국제도시 로봇랜드에 미래차 관련 시설을 마련해 미래차 핵심기술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한국GM 지역 협력업체 중 일부는 그간 한국GM 파동을 겪으며 현대와 기아차 등 납품업체 다각화로 위험 분산에 나섰다. 또 한국GM 납품 업체 중 상당수는 멕시코 등 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평2공장 협력업체와 더불어 양대 축인 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GM은 천문학적 공적 자금 투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 중인 만큼 지속적인 공장 유지를 위해서는 상설 기구 등 관련 조직체 구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광호 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한국GM은 국민 혈세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미래차 전환을 발표하지 않는 등 지역과 상생 방안을 찾고 있지 않다”며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한국GM이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상생협의체를 마련해 근본적인 처방과 지속 가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60년간 주인 바뀌어도 공장은 굴러왔건만…

일제, 부평에 디젤차량 생산공장 건설
새나라자동차, 1962년 현재 공장 준공
이후 신진-새한-대우로 경영권 이전

 

▲ 인천도시역사관에 전시 중인 코로나 승용차.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 인천도시역사관에 전시 중인 코로나 승용차.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인천의 자동차 역사는 90여년 전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인천을 중화학공업 생산단지로 조성하고 육군조병창 등을 세웠다.

1937년 일제는 현 부평구 산곡동 한화아파트 자리에 일본 군용 지프 생산을 위한 '국산 자동차 회사'를 세웠고 1939년 부평고교 자리에 디젤 자동차 생산공장 건설을 위한 일본인 근로자 사택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부평공장은 단 한 대의 자동차 생산을 하지 못한 영욕이 장소가 됐다.

6·25를 겪으며 인천 자동차 산업은 중흥기를 맞는다.

1955년 국내 최초 조립식 자동차 '시발(SIVAL)'이 출시됐다.

'시발'은 서울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가 미군용 지프의 부품을 재생, 엔진과 새시를 만들고 드럼통을 펴서 자체를 얹었다. 차 한 대 생산에 4개월이 걸렸고, 1958년 이 차의 국산화율은 58%에 머물렀다. 1963년 5월 단종될 때까지 2235대가 생산됐다.

▲ 동아일보 1963년 1월25일자 새나라자동차 광고. /사진제공=국가기록원
▲ 동아일보 1963년 1월25일자 새나라자동차 광고. /사진제공=국가기록원

한국GM 부평공장의 첫 출발은 1962년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인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 준공이다.

새나라자동차는 국내 최초로 현대식 자동차 조립 생산 라인을 구축했고, 그해 11월부터 닛산 블루버드를 생산했다. 그러나 새나라자동차는 수입 부품 생산 차질로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1965년 신진자동차는 새나라자동차 인수 이후 부평공장을 165만2000㎡ 규모로 확장하고 일본 도요타와 합작해 버스·트럭과 함께 퍼블리카·코로나·크라운 등 승용차를 생산했다. 특히 코로나는 1966년 출시 이후 1972년까지 누적 4만4248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 1976년 당시 새한자동차 부평공장 전경. /사진제공=국가기록원
▲ 1976년 당시 새한자동차 부평공장 전경.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신진자동차는 1972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공동으로 자본금을 출자해 지엠코리아(GMK)를 설립했지만 오일쇼크의 파고를 넘지 못했고, 산업은행이 GMK의 신진자동차 보유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새한자동차로 사명이 바뀌었다.

이후 대우그룹이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1983년 부평공장에 기술연구소를 세운 데 이어 1992년 GM의 남은 지분을 모두 넘겨받아 독자 노선을 걷는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7년 금융위기 여파로 해체됐고, 2002년 GM대우가 출범한 데 이어 2011년에는 아예 사명에서 대우가 사라졌다. 결국 인천 자동차 역사를 우리 손이 아닌 남의 손에 맡기게 된 것이다.

▲ 1970년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내부./사진출처=국가기록원
▲ 1970년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내부./사진제공=국가기록원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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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부평2공장 폐쇄-담장 옆 파편들] ① 흩어진 파편, 주워 담는 그들의 이야기 4년 전인 2018년 군산 때처럼 공장이 통째로 문을 닫는 건 아니지만, 한국지엠 부평공장 몸통에서 절반 치인 부평2공장이 오는 26일 가동을 멈춘다. “부평2공장 정규직 1200명 중 500명은 부평1공장, 700명은 창원공장으로 전환 배치한다. 군산처럼 대량 해고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부평2공장이 가동 중단해도 한국지엠 입장에선 부평1공장이나 부평2공장이나 같은 부평공장 개념이다. 하나로 봐야 한다”는 게 한국지엠 측 설명이다.그러나 한국지엠 담장 밖에선 고용불안과 경영 위기가 산발적으로 감지된다. 이런 내용은 크기도 멈춰버린 부평2공장…'대책 없는' 한국지엠·인천시 한국지엠(GM) 부평2공장 가동 중단 이후 지역사회의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의 8100억원의 공적 자금 투입 이후에도 지역 내 미래차 생산 방안 등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천시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김응호 정의당 인천시당 부평구위원장은 27일 성명을 내고 “세계자동차 시장의 변화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해도 한국GM은 부평2공장 폐쇄에 대해 아무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미래차 생산 등 발전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그러면서 “지난달 한국GM 출범 20주년 기념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