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얼핏 바라보면 붉게 노을 져 솟구쳐 흐르는 찬란한 바다풍경 그림이 있다. 영화로 제작돼 2014년에 개봉한 '미스터 터너'(2014) 속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작품이다. 영국 출신 화가 터너는 영국 최고의 미술상 '터너상'의 주인공이며 영국의 국민화가'로 불리우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이다.
붉게 노을진 바다 풍경화는 윌리엄 터너의 대표작으로 흔히 <노예선>으로 부르는 작품이다. 원제는 <폭풍우가 밀려오자 죽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바다로 던지는 노예 상인들,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 Typhoon Coming On 1840>이라는 제목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사건을 구체적인 묘사로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한 눈에 알아보게 그려진 그림은 아니었다. 거대하고 유려한 바다풍경속에 끔직한 현실을 숨겨 그리듯 붓질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터너의 대표작 '노예선'은 당시 노예를 사고 파는 상인들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려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좁은 공간에 갇어 배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실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을 그린 것이다. 질병에 걸린 노예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지만 실종이 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이유로 병에 걸린 노예들을 바다에 버려지는 순간들을 핏빛 색감과 물고기와 갈매기떼로 바다위을 노예들의 죽음을 흐릿하게 표현하고 있다.
터너는 역사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풍경화에도 담아내려 했다. 사회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보다는 적절히 숨기며 내포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가난한 이발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터너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 일찌감치 영국 화단에 떠오르며, 부와 명예도 누리지만 안주하지 않고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자세로 위험한 상황에도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그려 나갔다.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화산 가까이에서 그리고 실제 폭풍우와 눈보라가 몰아치던 배에 스스로 묶여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역동적인 작업과정을 작품으로 남긴 작가다.
터너가 자연의 풍경과 직면하며 적극적으로 그림을 담아낸 이유에는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감정을 화폭에 담아야 한다고 신념에서였다. 사실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고 고스란히 표현하려는 낭만주의, 자연주의 화가였으며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스스로를 자연속에 불태우고 체험하며 세상의 이야기를 자연을 통해 담아내려했던 진념의 예술가 터너의 풍경화에서 떠오르는 작금의 가슴 먹먹한 참사가 떠오른다.
납득하기 힘든 그것도 길을 가다가 말도 안돼는 이해하기 힘든 숫자의 사람들이 2022년 10월29일 밤 좁은 골목, 할로윈 축제와 뒤엉켜 올라오는 인파와 내려오는 인파가 마주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사람이 밀집하면서 일부는 도미노처럼 무너져 군중에 깔리고 그냥 길을 가다 선 채로 압박당해 질식에 이르는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풍경이 앞으로 가슴아픔 풍경으로 자리할 것이다. 과거 예술가 터너가 노예선의 아픔을 그림으로 함께 했듯, 이 시대의 영혼이 깃든 예술이 이태원골목길의 아픔과 외롭지 않게 영원히 함께 하리라
이태원 참사사고로 인한 희생자분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