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후 시설서 퇴거해야 할 판
경기도외국인인권센터, 내달 '조정위'
법률·지침 개정 없인 해결책 '난망'
지자체 “퇴소 유예 등 방안 강구”
부모를 여의고 생존이 막막해진 발달장애 외국인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에 시민사회 인권단체가 나섰다. 다만, '외국인 약자'를 품지 않는 법에 갇혀 해결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인권보호단체들은 허술한 인권보호 시스템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천일보 8월4일 1면, 5일 6면 '삶의 기로에 놓인 장애 외국인' 연속보도>
7일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오는 9월2일 정책 등에서 빚어지는 문제와 정책 보완을 논의 및 조정하는 기구인 '제3차 다양성소통조정위원회'에 왕모(50·여)씨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법률 전문가 등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대권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팀장은 “왕씨를 보호하는 이주여성 보호시설로부터 자료를 받은 뒤 원인과 과제 등을 찾으려고 한다”면서 “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당장 우리 측에서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는다거나 직접 도움을 줄 방법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국회가 법을, 또는 정부가 지침을 바꾸는 게 우선이란 설명이다. 김 팀장은 “정부나 국회에 제도 개선을 촉구할 것이지만, 받아들여져야 뭐가 바뀌어도 바뀐다”고 덧붙였다.
실제 왕씨를 놓고 기관 차원에서도 상황 파악에 나섰는데,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앞서 4일 인천일보 보도에 왕씨에게 부과한 연체금 포함 약 470만원의 건강보험료를 '결손 처분(장애인, 재산이 없는 빈곤층 등의 납세 의무를 소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결론은 불가능했다. 대부분 신청 조건이 내국인에 한정해서다. 외국인의 경우 사망·장기출국처럼 '소멸 사유'만 해당하고, 아니면 법원의 판결 등 법률상 면제를 받아야 한다.
왕씨가 머무는 시설(현행 규정상 시설 정보 비공개) 소관 지자체는 권한 부족을 이유로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추진 중인 보호기간 연장 조치도 불확실하다. 왕씨는 시설 입소 연장을 최대 2년까지 명시한 여성가족부 '여성아동권익증진사업' 운영지침 때문에 오는 18일이면 발달장애인 몸으로 집밖 길거리에 내몰린다. 이제 열흘 정도 남았다.
지자체 관계자는 “사각지대에 놓여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여가부 지침과 상충하지만 퇴소를 한 달 유예하고, 안 된다면 민간 시설이라든가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 관계자들은 왕씨가 안정적으로 살아가려면 법무부의 결정이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왕씨는 국적을 취득하고, 장애인 등록만 되면 장애인보호작업장 등 시설에서 자활노동 및 보호할 수 있다. 현재도 왕씨는 시설 내 의자에 앉아 작은 기계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을 취미 삼아 시간을 보낸다.
‘국적업무처리지침’의 예외조항에는 법무부가 ‘장애 등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사람’은 귀화시험과 면접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 왕씨는 아주대병원 진단결과, 사회연령 5.9세로 나오는 등 절차 면제가 시급하다. 하지만 이 조항으로 수혜를 본 사례자는 전국에 극히 드물다.
왕씨 관련 소식을 공유하고 있는 인권보호단체들은 답답한 가슴을 치고 있다.
강경남 오산지역 장애인 인권 활동가는 “인도적이냐, 반인도적이냐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약자를 배려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리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한편 왕씨는 1973년 4월 대만 국적의 화교 부부 사이에서 출생(충남 아산)한 이후 쭉 한국에서 지냈다. 거리 노숙과 쉼터 생활을 전전하다 경기도 한 시설에 왔지만, 건강보험료 체납 등 위기를 맞았다. 왕씨와 같은 약자인 국내 외국인에게 건강보험료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제도는 위헌성 논란으로 2019년 10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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