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일꾼'으로 정치 첫발…'행정수장·중앙' 입성

동두천 박형덕·광주 방세환·안산 이민근·광명 박승원
지역사회서 활동…시·도의원 발판삼아 '시장직' 안착
강득구·고영인·권칠승·임종성 등 7명은 국회로 진출

올해 1월 13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시행되면서 자치분권 2.0시대가 열렸다. 지방자치제도의 정착과 지방분권 확대가 본격화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됐다.

그로부터 5개월여 뒤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정치권은 역행하는 지방자치를 보여줬다. 여당 후보들은 정권에 편승해 국정 안정론을 앞세웠고, 야당 후보들은 국정 견제론으로 맞섰다. 지역민의 삶을 바꾸는 정책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후보 공천에서 중앙당 연줄이 지역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보다 크게 작용한 탓에 공천 파동이 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기도 내 중앙당 전략공천 지역구 7곳 가운데 5곳에서 석패했다. 지역 민심보다 당리당략을 우선한 뼈아픈 성적이었다.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후보자 간 권력 다툼을 감당하지 못해 5개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을 중앙당에 넘겼다.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고 책임을 떠밀면서 지역정치의 중앙 종속을 자인했다. 중앙당과 시·도당 사이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지역 일꾼을 발굴하고 키워야 하는 책무를 포기한 행태였다.

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지방자치의 주역이 있다. 동네 일꾼인 기초의원으로 밑바닥부터 민원현장을 누비고, 도의원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정치적 배움을 실천해 쌓은 경험으로, 지자체 행정의 수장 자리에 오른 기초단체장이다. 지방에서 정치를 배우고 성장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증인이다. 잘사는 지역 공동체를 꿈꾸면서 대한민국 정치의 상향식 발전을 이뤄가는 이들을 조명했다.

 

▲'기초의원→기초단체장' 성장하는 지역 정치인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2006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동두천시의회에 입성했다. 4년 뒤 재선에 성공했다. 2014년 선거에서 도의원으로 체급을 올려 도전했고 동두천시2지역구(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으로 광역의원이 됐다. 민주당이 31개 기초단체장 중 29곳을 휩쓴 4년 전 선거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동두천시장 후보로 체급 올리기에 도전했으나 석패했다. 4년 공백기 국민의힘 경기도당 부위원장으로 지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당내 경선을 거쳐 본선 진출, 시청 입성에 성공했다.

박 시장은 지역 토박이로 자영업을 하면서 민생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겪었고 정치의 꿈이 생겼다. 통장으로 동네 일꾼을 자청하며 지역사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시의원으로 정치 첫발을 내딛은 뒤 차근히 한계단씩 밟아 시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역대 시장 가운데 첫 시의원 출신이다. 고위 공직자 출신 등 영입인사 위주였던 지역 공천에서 지방자치 측면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도의원 재임 당시 제1연정위원장을 지내며 소통을 통해 난국을 돌파하는 능력을 키웠다. 밑바닥부터 올라온 이력답게 '시민이 주인이 되고 주도하는 시민참여 행정혁신'을 시정기치로 삼고 있다.

이와 함께 방세환 광주시장이 2018년 광주시의원에 당선돼 전반기 부의장을 지냈고 올해 국민의힘 소속으로 광주시장(지지율 53.8%)에 올랐다. 안산시의회 의장을 지낸 이민근 안산시장은 2006년부터 12년간 시의원을 역임한 뒤 4년 전 시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본선을 뛰었다가 낙선했다. 이번에 민선 8기 안산시장(지지율 46.5%)으로 선출돼 의정경험을 토대로 시정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지방의회를 발판삼아 중앙정치에 진출한 국회의원들은 기초의원에서 기초단체장으로 올라선 이들과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전부 민주당 소속으로 강득구(안양만안, 3선 도의원 출신) 의원, 서영석(부천정, 3선 시의원·초선 도의원 출신) 의원, 고영인(안산단원갑, 재선 도의원 출신) 의원, 문정복(시흥갑, 재선 시의원 출신) 의원, 김민기(용인을, 초선 시의원 출신) 의원, 권칠승(화성병, 재선 도의원 출신) 의원, 임종성(광주을, 재선 도의원 출신) 의원 등 7명이다.

 

▲지역운동가에서 시장까지

대표적으로 박승원 광명시장이 있다. 그는 지역 활동가로 출발해 광명시 비서실장, 광명시의원, 경기도의원을 거쳐 재선 시장으로 당선돼 광명시 행정의 총책임자 지위에 올랐다. 1980년대 독재의 억압에 맞서 사회운동에 발을 들인 박 시장은 6월 민주항쟁 이후 도시 철거지역에서 빈민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며 지역 공동체 형성과 도시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1997년 광명에 뿌리를 내려 일하면서, 행복한 시민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지역에 정착했다. 광명지역정책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지방의제21' 토론회에 참여했고 '푸른광명21추진협의회'를 만들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정책의제를 발굴했다. 광명시민의 삶을 제대로 알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생활정치를 체득했다.

박 시장은 전국 지자체 최초의 평생학습센터 설립을 통해 지역사회에 생활정치가 뿌리내리도록 기틀을 갖췄다. 스스로 얻은 지식을 마을에 접목시키고 배움을 실천하며 지역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찾고 도시의 주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그가 세운 목표였다. 박 시장은 평생학습센터를 나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의원으로서 소임을 다하려 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좌절했다. 2년간 백재현 전 시장 비서실장으로서 시민과 행정 사이 가교 역할로 소통을 배웠고 2004년 광명시의회 재보선에서 당선돼 의회에 입성했다. 차기 시의회 재선에 도전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여당 참패로 재선은 실패했다.

박 시장은 '더이상 정치하지 않았음 한다'는 아내의 말에 정치를 접었다. '박상대'에서 '박승원'으로 아예 이름을 바꿔버렸다. 정치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그 다짐이 무너졌다. 선거 한 번 떨어졌다고 정치를 포기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체급을 올려 도의원에 당선됐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 시절 후반기 민주당 대표의원을 맡아 연정을 이끌었다. '경기도 민생연합정치'라는 이름으로 협치와 분권을 선도했다. 31개 시장·군수 가운데 도의원 출신 12명이 당선된 해 박 시장도 광명시장으로 당선됐다.

박 시장의 정치생명에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은 올해 지방선거 때였다. 민주당 경기도당 공관위의 기초단체장 공천심사 결과, 임혜자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단수공천돼 박 시장은 공천배제됐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도당 공관위 결정은 광명시민과 당원의 의사를 무시한 폭거이며 공천이 아닌 사천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중앙당 재심을 거쳐 당당하게 경선에 임하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중앙당 재심 신청이 인용돼 경선에서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본선 지지율 53.4%로 민선 8기 광명시를 이끌게 됐다.

/박다예 기자 pdyes@incheonilbo.com

 


 

박승원 광명시장 “시민들, 전략공천 분노…지역 위해 일할 사람에 투표”

▲ 박승원 광명시장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헌신과 사명감이 다할 때까지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제공=광명시
▲ 박승원 광명시장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헌신과 사명감이 다할 때까지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제공=광명시

'단 3표 차로 울고 웃었네.'

20년 전 젊고 패기 넘치는 정치지망생에게 현실은 냉정했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평생학습센터를 설립한 박승원 광명시장은 '평생학습도시'를 조성하는 데 몰두했다가 의회로 눈을 돌렸다. 애써 구상한 신규 사업계획은 번번이 막혔다.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라는 설립 목적이 선출직 의원들에게 부담이었을까. 센터 규모와 업무 범위를 키울수록 의회의 통제와 감시가 뒤따랐다.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가꾸고 시민사회 역량을 어떻게 확대시켜 나갈지 늘 동지들과 고민했어요. 가만 보니 이걸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하는 의회가 사실 도와주는 기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모든 정책 결정은 의회에서 최종 의결되잖아요. 지역을 제대로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려면 지역정치를 해야 했어요.”

박 시장은 첫발부터 꽈당했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한 뒤 지구당 위원장을 찾아갔다. 제발로 찾아온 청년을 위원장은 반가워했다. 무난히 단수 후보로 본선에 진출하나 싶었으나, 아뿔싸. 경선을 치러 단 3표 차로 낙선했다.

“재선 백재현 전 시장의 비서실장으로 2년 일하다 보궐선거가 생겨요. 그때는 단 3표 차로 이겼습니다. 집행부 예산과 행정 권한이 공익적 관점에서 모두에게 균형적으로 쓰이는지 협력과 견제의 관점으로 봤어요. 이를 구분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아요. 시민사회활동으로 축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죠.”

공천 충격은 때아니게 재연됐다. 재선에 도전한 박 시장이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면서다. 그는 지역에 인물이 없다는 전제로 중앙당의 낙하산 공천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중앙당이 꽂아내리는 막무가내식 공천은 '나쁜 정치'라고 정의했다.

“특정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지역에서 꾸준히 준비한 사람을 배제하는 결정을 하니 시민들이 분노하는 거예요. 박승원이 정말 어떤 인간인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시민들은 다 알아요. 나를 위해, 광명을 위해 일할 사람이 누구인가 선거만을 기다리며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정당과 관계없이 교차 투표가 나왔듯이 말이에요.”

박 시장은 지방에서 정치를 배운 지역 인사 배출을 확대하기 위해 정당 차원에서 공천 활성화와 정당 또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정치 아카데미 설립을 통해 정치 일꾼의 성장환경 조성을 들었다. 끝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헌신과 사명감이 다할 때까지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싱긋 웃는 박 시장에게서 내유외강의 심지가 엿보였다.

/박다예 기자 pdye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