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땅 드러낸 남극, 온 몸으로 온난화와 맞서다

작년 12월 남극세종과학기지 도착
보이는 건 건물·자갈밭·봉우리 뿐

최근 2년간 눈은 안 내리고 녹아서
매서운 바람부는 강원도 같은 모습
▲ 남극의 모습. 김재환 세종과학기지 생물대원(사진 아래쪽).
▲ 김재환 세종과학기지 생물대원.

극지연구소 대원들이 지구의 꼭짓점, 남극서 꿈틀거리는 소식을 전해왔다. 지구온난화의 신랄한 현장에서 몸으로 겪는 일들을 글로 풀어냈다. 인천일보는 극지연구소의 도움으로 소소하지만 소중한 남극 현지 의 전갈들을 격주에 한 번씩 담는다.

'남극'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귀여운 펭귄과 바다를 떠다니는 빙하, 그리고 눈으로 뒤덮인 미지의 땅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남극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강원도'였다.

지난 12월3일, 남극 월동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17명의 월동대원들과 함께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킹조지 섬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절반쯤 눈으로 덮인 자갈밭과 강한 찬바람이 우리를 환영해줬다. 남극 날씨는 변덕스럽다. 도착할 때만해도 흐리고 강풍이 불었는데 조금 있으니 맑아졌다. 날씨가 좋아지자 월동대와 하계연구원들은 남극의 주요 운송수단인 조디악 보트를 타고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바톤반도로 향했다.

남극세종과학기지는 1988년 준공된 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하계기간인 12월~2월에는 하계연구원들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며 3월~11월은 월동대가 상주하며 기지를 운영한다.

세종기지 주변에는 칠레, 러시아, 우루과이 등 여러 외국기지가 있으며 때때로 기지 간 교류도 이뤄진다. 남극은 남위 60도 이남 지역으로 규정되며 지형적으로는 동남극과 서남극으로 나뉜다. 세종기지는 서남극에 위치해있는데 서남극은 동남극에 비해 지구온난화에 더 민감해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남극의 모습.

세종기지에 도착하니 온난화를 제법 실감할 수 있었다. 보이는 것은 기지 건물, 자갈밭, 돌로 뒤덮인 봉우리였다. 봉우리 근처에 쌓인 것을 제외하면 눈은 그리 많지 않았다. 12월은 남극의 여름이기 때문에 원래 눈이 많이 없나 싶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2년 전만 해도 눈이 제법 쌓였었다고 한다. 최근 2년간 눈이 오지 않거나 많이 녹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지 근처를 가만히 둘러보니 나무만 있었다면 강원도 산골이라고 해도 믿을 풍경이었다. 그만큼 눈이 없고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한국에선 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져서 솔직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 있는데, 남극의 맨땅을 보니 온난화가 좋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세종기지의 12월을 돌아보면 비바람만 기억에 남는다. 풍속 10m/s 전후였던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풍속 10m/s 이상이면 우산이 뒤집힌다고 하니 매서운 바람이다. 거기다 비나 진눈깨비가 날리면 옷이 젖어 금방 추웠다. 이렇듯 남극의 첫 인상은 눈으로 뒤덮인 대자연의 광활함보다는 비바람 부는 '강원도'에 가까웠다.

▲ 남극에서 김재환 세종과학기지 생물대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정환 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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