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부서지고 빙산 뒤집힌다…큰 파도 소리 들려

빙하는 얼어붙은 강, 바다로 흘러
캠벨 빙하, 측정 나이 1억7000년
무수한 얼음 퍼지는데 바다는 고요
▲ 무수한 작은 얼음조각을 헤치고 조디악 보트로 접근하니 뒤집힌 빙하조각이 보였다

극지방, 특히 길게 바다로 뻗어 나간 빙하인 빙설을 마주보고 있는 과학기지에서는 또다른 천둥 소리를 바다로부터 들을 수 있다. 빙하가 부서지거나 빙산이 뒤집히는 충격으로 발생한 큰 파도가 내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저 떨어져 나간 조각 몇 년 정도 된 걸까? 천년?”

쌍안경을 넘겨 받으며 바라보니 빙설의 모양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 보인다.

“캠벨 빙하는 메사에서 시작해서 길이가 110㎞가 넘으니까요.”

빙하는 얼어붙은 강. 'Flux of frozen' 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정말로 천천히 바다로 흘러가는 민물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얼음 절벽으로 보이지만 지질시대의 시간 감각으로 보면 산맥에 내린 눈이 천천히 바다로 흘러 가는 것은 여느 강과 다름없을 것이다.

“천년 보다는 확실히 길지 않을까요? (연구소에서 출판한) 논문에 (캠벨 빙하)연대를 측정결과가 있으면 참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영해군 중위 빅터 캠벨 (Victor Campbell)의 이름을 딴 이 얼어붙은 강은 메사 산맥의 남쪽 끝에서 시작하여 딥 프리즈 산맥 과 멜버른 산 사이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북쪽 테라 노바 만으로 흐른다. 캠벨팀은 난센 빙상(Nansen Ice Sheet)의 한 지류로 생각했지만, 지금의 빙하의 범위를 결정한 것은 1961년 뉴질랜드 탐사 팀이었다. 기지의 의무실에는 메사 산맥(mesa range)에서 가져온 참나무 화석이 놓여있다. 미답지 탐사단의 박하동 기술원이 증정한 것인데, 방사선 측정 연대는 무려 1억 7000년 전.

'누가 알겠어? 얼마나 오래된 건지'

이 땅의 얼음은 4000만 년 전인 신생대 에오세 말기부터 내린 눈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다. 이날부터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다는 우레 같은 천둥 소리를 들려주었다.

“천둥은 언제나 비구름과 동반하여 일어나는 법이지”

다만 늦게오고 먼저 오는 순서의 차이일 뿐이다. 오늘 같은 해명이 끊임없이 들리면 지구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빙설의 서쪽 끝이 확실히 깨져 나갔고. 무수한 얼음 덩이가 띠를 이루며 퍼져 나가는 가운데, 바다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 김병권 남극 장보고기지 의료대원.

/김병권 남극 장보고기지 의료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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