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포동에 있는 '버텀라인'은 음악평론가 박성건이 쓴 <한국재즈 100년사>에 '인천을 넘어 국내 대표 재즈클럽 가운데 한 곳'이라고 밝힌 그대로 '재즈 메카'로 알려진 곳이다.

버텀라인이 버티고 있는 2층짜리 목조건물은 100여년 전 패션잡화를 팔던 '후루다(古田) 양품점' 자리로 건물 내부 천장에 남아있는 서까래가 인천 개항장의 역사 그대로 간직한채 운치(韻致)를 더해준다. 100년쯤 뒤에 공연장이 들어설 거라고 알고 지었는지 버텀라인의 서까래는 소리를 품었다 뿜어내며 음폭을 깊고 풍부하게 해준다.

1983년 버텀라인이 처음 문을 열 때, 당시 주인은 뉴욕의 유명 재즈클럽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 뉴욕의 그곳은 영업난으로 문을 닫았고, 인천의 버텀라인은 꿋꿋이 버티고 있어 내년이면 40년째를 맞는다.

 

#세월과 사람을 이어준 아날로그 음악

1995년부터 버텀라인을 지키고 있는 허정선 대표는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수천장의 LP처럼 세월과 사람을 아날로그 음악으로 이어주고 있는데 벌써 27년째다.

버텀라인이 새해를 맞아 1월 한 달 동안 인천 출신 뮤지션들이 중심이 된 팀들의 공연을 준비했다. 첫 번째가 지난 8일 열린 '송석철 Quartet'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송석철은 신포동 토박이로 그의 음악에는 당연히 신포동만의 멜랑꼴리하고 블루지한 B급감성이 녹아있다.

영국 출신의 Procol Harum이 1967년 발표한 'A whiter shade of pale'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Kiss and say goodbye', 'Danny boy', 'Cuore matto'(펄시스터즈의 첫사랑), 거북이의 '사계',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신중현의 '석양'에 이어 앵콜곡으로 Sting의 'Fragile'을 들려줬다. 송석철은 중간중간 곡 소개마다 80년대 동인천과 신포동의 소위 '물 좋은 나이트클럽'인 팽고팽고, 두발로, 국일관 등에서 기깔나게 연주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분위기를 추억 모드로 돌려놓았다.

 

#인천 출신 뮤지션들의 낯익은 공연

이날 버텀라인에는 중년의 부부, 젊은 연인, 아버지와 딸의 커플 관객과 친구 또는 직장동료로 보이는 40여명이 코로나 이후 일상풍경이 된 '마스크 공연'을 박수와 함성으로 함께 했다.

버텀라인에서는 언젠가부터 '재즈 찐팬'인 단골손님을 '버팀라인'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까지는 아닐지라도 이곳에서 자주 보기 때문에 눈인사를 나누는 낯익은 사람들이다. 이들 '버팀라인'은 손님이지만 공연 때 일손이 모자라면 허정선 대표를 도와 무대 준비나 진행을 함께하기도 한다.

새해를 여는 버텀라인의 1월 공연은 15일 '김준형 Quartet'으로 이어진다. 재즈 기타리스트 김준형은 대학생이던 8, 9년 전 오로지 연주가 하고 싶어서 허정선 대표를 제 발로 찾아와 인연이 됐다고 한다. 22일에는 '김형준 Band'다. 어느덧 인천의 중견 재즈 기타리스트가 된 김형준은 흐트러지지 않고 한결같은 에너지를 품고 꾸준히 음반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설날 연휴를 앞둔 29일 버텀라인을 찾는 'Lyrical Jazz Band'의 보컬 최용민은 인천 재즈의 형님으로 통한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색으로 '버팀라인'에게 귀호강 무대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헤밍웨이·네루다 못지않은 '버팀라인'

쿠바에 있는 카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 등이 단골손님이어서 유명하다. 1942년 개장했으니 80년이 되는 지금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버텨온 게 단골손님과 연주자들 덕분이었어요. 다음 주인이 누가 되든 50년, 100년 후에도 이곳에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으면 좋겠어요.”

허정선 대표의 희망처럼 버텀라인은 앞으로 긴 세월 계속 버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기까지 버텨온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무거우면 무거웠지 결코 가볍지 않은 '코로나 2년'을 버텨온 버텀라인에는 네루다나 헤밍웨이 못지않은 '버팀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여승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