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철 논설실장
여승철 논설실장

'알다가도 모를 세대 그들은 기억할까? 그 시절로 갈 수 없는 이내 맘 알 수 없지 /그라운동장의 추억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곳, 우리들만 기억하는 만남의 장 //그라운동장의 추억 나는 가보지 못한 그곳, 그들만이 기억하는 만남의 장'

인천 미추홀학산문화원이 지난 10, 11일 이틀 동안 학산소극장 무대에 올린 창작음악극 '숭의 그라운동장'의 노랫말이다.

'그라운동장'은 인천 중구 도원동과 남구(현 미추홀구) 숭의동에 걸쳐 있었던 인천공설운동장을 일컫는 말이다. 인천체육의 요람이자 성지였던 그라운동장은 탄생부터 철거까지 인천체육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34년 일제는 당시 웃터골운동장(현 제물포고 자리)을 대신할 장소로 도산정(현 도원동 부근)에 운동장을 신설 이전한 뒤, 36년에는 관중석 5000명 규모의 야구장과 400m 트랙에 1만명 규모의 육상장을 건립한다.

한국전쟁 이후 망가진 공설운동장을 미 군정 시기에 복구하는데 그라운동장이란 별칭이 이때부터 쓰이게 됐다. 영어 그라운드(Ground)와 우리말 운동장이 절묘하게 만나 만들어진 애칭은 당시 서양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를 즐기는 곳이라는 뜻과 외국말을 섞어 쓰면 왠지 '있어 보이기'도 해서 60~70년대를 살았던 인천 토박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숭의종합경기장으로 이름이 바뀐 그라운동장은 1964년 9월 제45회 전국체전을 개최하며 명실상부한 인천체육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78년 정부수립 30주년, 83년 인천 개항 100주년, 99년에는 80주년 전국체전도 치른다.

그라운동장의 한 축인 숭의야구장은 해방 이후 인천고와 동산고가 주도했던 인천 야구의 전성기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삼청태 시대'로 불리던 삼미 슈퍼스타스,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의 첫 우승과 연고지 이전의 쓰라림에 이어 SK 와이번스의 초창기를 모두 지켜본다.

숭의야구장의 특징은 외야의 높은 철망 펜스였다. 이유는 '삼청태'의 전력이 약해 상대 팀의 홈런이라도 막아보자는 갸륵한 심정이었으나, 판정시비가 나면 관중들이 항의표시로 펜스에 매달려 소리치는 장면은 볼거리였다.

2008년 발파 해체 후 철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라운동장은 2012년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새롭게 태어나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으로 팬과 시민들의 열성적인 함성과 뜨거운 숨결이 함께 하는 곳으로 부활한다.

음악극으로 소환된 '그라운동장'. 두 패로 갈라져 서로 힘을 다해 싸우는 선수들과 이를 지켜보는 숱한 관중들의 사연이 모두의 추억으로 남아있듯 인천의 옛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낙엽처럼 켜켜이 쌓이고 있다.

 

/여승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