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철 논설실장
여승철 논설실장

배호만큼 늦가을과 닮은 가수도 드물다.

특유의 창법부터 가슴을 울린다. 중후한 저음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바이브레이션과 함께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흘리는 듯 애절하게 내뱉는 고음은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돌아가는 삼각지'에서 서글피 찾아온다.

사진이나 영상에 남아있는 배호는 단정한 싱글 차림의 양복 정장에 가늘고 긴 넥타이와 금테 안경을 낀 세련되고 도회적인 신사의 지성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배호의 노래에 자주 나오는 안개, 비, 밤, 이별, 외로움, 안녕, 마지막 등의 제목과 노랫말은 그의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안개 낀 장충단공원'에서 흐느끼는 듯 '누가 울어'를 부르는 모습으로 가을의 적막을 짙게 해준다.

인천은 1942년 중국에서 광복군의 장남으로 태어난 배호가 해방 후 1946년 귀국하면서 첫발을 디딘 곳이고, 인천 중구는 2년 정도 머물렀던 곳이다. 배호가 중학교를 중퇴하고 드럼을 치며 음악의 길로 들어선 곳이 바로 부평 미군부대 나이트클럽이었다. 인천 연안부두 해양광장에는 배호의 인천노래 '비내리는 인천항 부두'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그의 흉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1967년 3월 발표된 최고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부터 국내 가요계를 휩쓴 당대의 스타 배호는 당시 가수들의 인기를 보여주는 척도였던 연말 10대가수에 단숨에 오른다. 하지만 그의 인기를 시샘하듯 몇 해 전부터 앓아오던 신장염이 악화돼 자신의 운명같은 마지막 곡인 '마지막 잎새'를 남기고 1971년 11월7일 스물아홉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올해가 배호 50주기다.

오는 6일 인천의 문화예술단체 '길오페라'에서 배호가 걷던 거리에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공연 '배호, 스물아홉 청춘' 음악회를 마련했다. 그가 10대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부평미군부대 건너편에 있는 '펍캠프마켓'에서 열어 50주기를 기린다니 의미가 남다르다.

그가 떠난 지 50년. 인천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배호를 사랑하는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고 '배호가요제'도 해마다 열린다. 온라인에 수십 개가 넘는 배호 팬클럽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호주, 칠레에도 모임이 있다.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노래방에서 배호의 '꺾는 창법'을 따라하고 있고, 배호 노래를 록 버전으로 바꿔부르는 젊은층도 있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배호 노래는 온라인 음원이나 USB로 듣는 것보다 LP 음반으로 들어야 제맛이다. 오래된 영화의 낡은 필름에 보이는 빗줄기처럼 한두번씩 끊기거나 지직거리며 영혼을 긁어주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스산한 계절에 젖어보는건 어떨까.

 

/여승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