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승철 논설실장
▲ 여승철 논설실장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4·16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거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인천의 '인현동 화재 참사'도 그중 하나이다.

1999년 10월30일 오후 7시께 인천 중구 인현동에 있는 4층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인현동 화재 참사'는 57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부상자만 80명이 넘었다. 이들 대부분은 인천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청소년들이었다.

당시 토요일 저녁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던 온 국민을 놀라게 한 비극은 지하 노래방에서 내부 수리 중 발생한 화재로부터 시작했다. 불길이 2층 호프집으로 올라왔고, 그곳에 있던 청소년들이 탈출을 시도하자 호프집 사장이 하나뿐인 출입구를 잠가버려 수십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는 대형 참사가 됐다. 문을 잠근 이유가 '돈을 내지 않을까 봐'였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가을 축제를 마친 학생들이 뒤풀이로 '호프집에 갔다'는 사실 때문에 들어야 했던 '불량 학생들의 일탈'이라는 비난이다. 이는 유가족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며 큰 상처를 안겼다.

2004년 학생들의 넋을 기리고 청소년 쉼터를 목적으로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화재 현장 인근에 건립됐다. 지난해 9월에는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 추모위원회'에서 입구 화단에 공적 기억 조형물을 세웠다. '기억의 싹'으로 명명된 조형물 명판에는 '생명 존엄과 공공의 기억을 미래세대와 함께하고자 인천시민의 마음을 모아 기억의 싹을 세웁니다'라는 글귀를 새겼다. 두 달 뒤에는 추모식과 추모 작품 전시회 등 각종 행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참사 당일인 30일이 다가오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학생이라는 점에서 시교육청, 참사 발생 장소가 인현동이라는 점에서 인천 중구, 인천시민 모두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인천시 등 관련된 기관 어느 곳에서도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단지 오랜 기간 인현동 참사의 기록과 공유에 앞장서온 홍예문문화연구소에서 조촐한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 처방식의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 약속 후 보여주기에 그치는 전시성 행사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기억의 싹'마저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1년 늦게 지난해 치러진 20주기 행사에 시청, 교육청, 중구청을 대표해서 참석한 관계자들이 “참사의 기억을 바로잡고 희생자 명예를 회복시켜 유가족을 위로하고 미래세대에 전하겠다”고 입을 모아 했던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되살아나는 인현동의 아픈 기억들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유가족만의 것이 아닌 상처는 공공의 기억으로 나누어 함께 관심을 갖고 보듬어야 치유될 수 있다.

 

/여승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