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44개국에 달하는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원국 중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을 한 차례 이상 찾아가면서 인도의 뉴델리와 경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아프간은 몇 차례 입국을 시도했으나 체육회 쪽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다. 국내 정세가 계속 불안정하니 제3국에서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아프간 체육회 압둘라 카림 부위원장을 만난 것은 2006년 6월 유치위원회에서 목표활동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개최했던 아시아 스포츠 심포지엄에서였다. 체육회 임원과 함께 온 카림 부위원장은 인접국가 인도보다 한국에 우호적이었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국제봉사기구에 감사를 표하면서 인천이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하면 단단한 선수단을 참가시키겠다고도 했다. 그와 대화 중 이혼한 여성을 '사용했던 여성'이라고 표현하기에 아프간 사람들의 특이한 여성관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10여개의 '스탄'자로 끝나는 국가들 중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세계 강대국들이 쟁탈전을 벌였다. 험준한 산악지형에 열악한 기후조건과 함께 토착 세력의 끈질긴 저항에 밀려 세계적인 패권 국가들이 번번이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다. 19세기에 러시아와 패권을 다퉜던 영국은 러시아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아프간을 침공했으나 수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군하며 1919년 독립을 허용했다. 미소간의 냉전시대였던 1979년에는 친소파 정권에 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진압하기위해 소련은 막대한 준비와 병력을 투입했지만 10여년만에 5만여명의 병력을 잃고 퇴진했다. 당시 소련군에 대항하던 세력이 탈레반의 기원이 되었다.

▶2001년 이슬람 테러집단 '알카에다'가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의 펜타곤을 공격한 후 미국은 아프간에서 연합군들과 탈레반을 축출하고 2004년에는 친서방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은 2011년 오바마 대통령 때는 10만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현지 지형에 밝은 탈레반의 거센 저항이 계속되면서 2조2600억 달러(2620조원)의 전비를 쏟아붓고 2461명이 희생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20년의 전쟁을 끝내고 철수하고 말았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와 함께 그동안 우리나라 대사관이나 관계기관에서 일하던 아프간 국민 378명을 공군 수송기편으로 안전하게 국내로 이송한 것이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완전히 장악하는 과정에서 희생될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작전이었다. 정부 각 부처와 미국과의 협조로 작전을 지휘한 최종문 외무부 2차관의 역할이 돋보이는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