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아버지이자 원칙·소신 지킨 공무원
▲ 고 윤유선씨가 2000년 10월 중국 만리장성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인천시
▲ 고 윤유선씨가 2000년 10월 중국 만리장성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인천시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항상 건강 챙겨라', '젊은 시절 뒷짐 지고 나태하게 살지 말아라', '어머니 잘 돌봐드려라', '공직생활 열심히 해라' 등의 말씀을 자주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천시와 인천일보 공동 캠페인 '인천과 함께한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통해 선친을 기리는 윤준호씨는 “가족에게 자상하고 헌신적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묵묵히 지켜봐 주셨고 자식들이 잘못된 길을 가려 한 땐 엄히 다스렸다”고 회상한다.

고 윤유선(1942년 1월20일∼2021년 2월5일)씨는 1942년 1월20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서 2남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이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힘든 유년기을 보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도포기해야 했지만 독학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 인천시에서 공직 생활을 했고 2001년 인천시 법무담당관으로 퇴직했다. 고인은 30여 년 공직 생활을 원칙과 소신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인천 북구 위민실장 재직 땐 집 없는 장애인에게 따듯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미담이 알려져 청백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의 장남인 준호 씨는 “아버님은 음악, 미술, 서예 등 예술 감각도 뛰어나 주위의 부러움을 샀는데 특히 피아노 연주를 즐겨 교회 반주자로 활동하거나 집에서 피아노와 곁들여 가곡과 성가를 부르던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전한다. 또 “사이클, 등산, 수석, 화초 가꾸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취미 생활도 늘 어머니와 함께하곤 했다”고 추억한다.

고인은 8년 전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몇 차례 수술을 받고 고비를 넘겼지만 이후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왔다. 부인의 헌신적인 보살핌에도 불구, 병원 치료를 받던 중 코로나19 사태 탓에 면회마저 제한된 상황에서 가족과 짧은 인사를 끝으로 올 2월 5일 오전 9시 15분 평화롭게 잠들었다. 유족은 부인과 아들 세 명, 손자 네 명.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이 추모기사는 인천광역시와 인천일보가 생을 마감한 인천시민 또는 인천 연고자의 넋을 추모하고 유족에게 고인과의 특별하고 뜻깊은 추억을 선사하고자 진행하는 것입니다. 추모기사 게재를 원하는 독자는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추모기사 신청 코너(www.incheon.go.kr/welfare/WE010317) 또는 아래 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신청하시면 됩니다. 장례식장의 경우 해당 장례식장 이용객에 한해 접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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