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첫 번째 강좌에서 이경수 전 양곡고 교사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정세일)의 첫 번째 평화 강좌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이 지난 21일 오후 여행인문학 도서관 ‘길위의 꿈’에서 개최됐다.

'2021년 인천시평화도시조성' 공모사업으로 진행된 이날 강좌는 ‘강화도, 근대를 품다’의 저자 이경수 전 양곡고 역사교사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한 강의로 진행됐다.

이 교사는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엄청나게 확대된 서양제국들은 자국 생산품의 판매처와 값싼 원료 공급처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돼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와 미국은 조선을 압박하기 위해 수도 한양의 길목인 강화도를 점령해 살인, 방화, 약탈을 일삼았고 조선 민중들은 큰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병인양요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박해를 구실로 1866년(고종 3년) 강화도에 침범, 방화와 약탈을 자행한 프랑스군에 의해 벌어졌다.

당시 청나라 톈진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은 자국의 신부가 처형됐다는 보고를 받고, 그 해 11월 전함과 병력을 동원해 강화도를 점령했다.

이 소식을 접한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에 대항하기 위해 포수 500여 명을 이끌고 정족산성에 매복해 공격을 시도하던 프랑스군을 격퇴했다.

1개월 여 간 강화도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은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철수를 결정했으나 퇴각을 하는 과정에서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외규장각 도서 300여 권을 탈취해 자국으로 빼내갔다.

병인양요 5년 뒤인 1871년에는 미국이 자국 국적선 제너럴셔먼호 방화사건을 핑계 삼아 강화도 일대를 점령하고 잔인한 살육을 저지른 ‘신미양요’가 발생했다.

제너럴셔먼호는 1866년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올라와 조선과의 통상을 강압하며 평양 주민들을 살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서양의 침탈을 우려했던 조선군과 평양 주민들이 이에 격분해 배에 불을 지르고 선원들을 살해했다.

미국 아시아 함대는 이 사건을 들먹이며 전함 5척과 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1871년 6월 10일과 11일 이틀간 초지진과 광성보에 상륙해 조선군 수백 명을 잔인하게 살육했다.

조선군은 월등한 화력으로 무장한 미군을 상대로 죽어가는 순간까지 맨손으로 미군의 얼굴에 흙을 뿌리며 완강하게 버텼지만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2백여 명이 전사하는 등 무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전투 과정에서 살아남은 100여 명의 조선군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결하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이 일대가 조선군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미군은 이후 20여 일간 강화도에 머물렀으나 조선이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자 포로를 자진 석방하고 철수했다.

미국은 이 사건을 ‘1871년 미-한 전쟁(United States-Korea War of 1871)’이라고 부른다.

이경수 교사는 “서양이 강화도를 침공하자 강화유수 등 지도층들은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강화군민은 최후까지 서양군대에 맞서 싸웠다”며 민초들의 저항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 이경수 교사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한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경수 교사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한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생명평화포럼의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행사는 이날 첫 번째 순서를 시작으로 오는 11월 20일까지 5차례의 강연과 두 차례의 현지답사로 이어진다.

두 번째 강연은 ‘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인천’을 주제로 6월 17일 진행될 예정이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