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웅 광복회장이 '항일독립운동 정신으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묻는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모식’ 및 ‘김원웅 광복회장 특별 강연회’가 17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베스트웨스턴 로얄호텔 에메랄드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12주기 인천시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하고 ‘인천노사모’가 주관했으며 지창영 인천노사모 대표가 사회를 맡았다.

박남춘 인천시장, 신은호 시의회 의장, 도성훈 시 교육감, 박찬대 국회의원(인천 연수갑) 등 기관·단체장과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회원 8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식전행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 영상 상영에 이어 김형진 전 인천노사모 대표가 추모곡 ‘상록수’를 열창했다.

신은호 시의회 의장은 1부 추모식 인사말을 통해 “인천시의회는 남북평화통일과 공동번영을 추구하고 민주주의 완성을 말씀하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성훈 시 교육감은 “우리 사회 전반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도,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을 맞아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 건설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 대표는 “김구 선생께서 외쳤던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가 얼마나 절실한 민족의 소망인가를 절감한다”면서 “국가보안법 철폐 등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에 힘을 모아 나가자“고 당부했다.

2부 행사에서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항일독립운동 정신으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묻는다’를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다.

김 회장은 “일제의 잔재 청산과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과제를 소홀히 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자리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빌붙었던 자들이 차지했다”면서 “‘이 중 어떤 자는 ‘조선 청년의 꿈은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야스쿠니 신사에 묻혀 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일 청산은 여당·야당의 정파적 문제도 아니고 보수·진보의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면서 “광복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 친일 반민족 행위자 없는 나라, 친일파가 사라진 국회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4대,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회장은 1996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하로동선’을 함께 운영하는 등 개인적으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개혁당을 창당해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6년 ‘민족사 정립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9년 6월부터 제21대 광복회장을 맡고 있다.

아래는 김 회장의 강연 요지다.

'항일독립운동 정신으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묻는다'
(2021. 5. 17. 오후 7시, 베스트웨스턴 인천로얄호텔 에메랄드홀)

대한민국의 현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 때 탄압받았는데 그 후손들은 해방된 땅에서 혹독하게 탄압받으며 살아 왔다. 빨갱이로 몰려 갇히고 고문당하고 심지어 재판도 없이 처형당한 일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천대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독립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듬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놓았다. 우리 민족은 이를 독립의 서광으로 여겼다. 그러나 미국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국제적인 고려 사항인 독일 식민지에는 적용되나 여타의 식민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919년 3.1운동 등으로 분출됐던 독립의 열망이 처참히 짓밟힌 터에서 우리 민족은 독립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함을 절감한 것이다. 약산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던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탄생도 그런 각성의 결과였다.

미국의 대 조선 정책과 대한민국

1940년대 미국은 조선을 미국의 전략을 위한 기지로 활용하기로 했다. 조선의 독립은 안중에 없었다. 자기들 전략의 효율성을 고려한 나머지 오히려 일본과 그 부역자들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3.8선 이북에 들어온 소련군이 해방군임을 표방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군은 이남에 진주하면서 자신들이 점령군임을 노골적으로 표방했다. 맥아더는 하지 중장에게 한반도 진주를 명령하면서 민족주의자들에게 권력을 용인하면 안 된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이는 친일 청산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정일권, 백선엽 등 일제부역자들을 군사영어학교에 끌어들여 미국식 군사훈련을 받게 했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1대부터 21대까지는 모조리 독립군을 때려잡던 자들이 역임했다. 노쇠해서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일제부역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을 위한 나라로 구조화됐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하나 내용으로 보면 조선총독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부끄러운 현실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묵념할 때는 마음이 착잡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한 이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애국자들은 음지에 묻혀 있는 이 자리에서 과연 애국하겠다는 결의로 묵념이 되겠는가.

국가 행사장에서도 종종 착잡한 마음이 든다. 단상 아래서 박수 치는 사람들 중에는 독립군 후예들이 많은데 단상 위에서 박수 받는 이들은 친일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1996년 여러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함께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식당을 개업했는데 대표는 김원웅이, 감사는 노무현이 맡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였고 개혁당 창당에 이어 당대표를 역임했다.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노무현 후보를 일관되게 지지했고 응원했다. 나의 소신이었다. 결국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는데, 설사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할지라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것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뜻에 따라 비공개 특사로 평양을 방문했고 민족평화축전 개최를 합의,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축전을 실시했다. 해방 이후 최대의 남북공동행사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노력

2000년에 20명의 여야 의원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을 발의하여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동료 국회의원 여러 사람이 과격하다며 함께하기를 거부했다.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마땅하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