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회원들이 ‘15주기 추모 행사’와 ‘박영근 작품상’ 시상식을 마친 뒤, 수상자인 김성규 시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노동자 시인 박영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박영근 작품상’의 일곱 번째 수상자로 ‘굴뚝’의 작가 김성규 시인이 선정됐다.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회장·서홍관)는 지난 15일 오후 인천 북구도서관 강당에서 ’박영근 시인 15주기 추모행사 및 제7회 박영근 작품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기념사업회는 이 자리에서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된 김성규 시인에게 ‘작품상’과 함께 상금 2백만 원을 전달했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성규 시인은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등을 펴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굴뚝은 한국 노동계의 아픈 풍경인 굴뚝 고공농성을 시적 언어로 포착해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굴뚝에 올라가 파업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절박함은 75미터의 굴뚝만큼 높고도 위태롭다”며 “장기 농성 투쟁과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고단함을 시적으로 포착해 낸 것은 소중한 성취”라고 평가했다.

▲ 제7회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한 ‘굴뚝’의 작가 김성규 시인/사진제공=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 제7회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한 ‘굴뚝’의 작가 김성규 시인/사진제공=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시상식에 앞에 박영근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고통 없는 문학이 어디 있으랴!!’를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했다.

특별강연과 작품상 시상식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부평구청 옆 신트리공원을 찾아 ‘박영근 시비’를 탐방하는 행사를 가졌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5일부터 이달 말까지 인천북구도서관 2층 디지털실 앞 ‘모두 공간’과 3층 종합자료실’ 앞에서 박영근 저서와 관련 자료 42종을 전시하는 ‘박영근 특별 전시회’를 진행한다.

▲ 박영근 시인 생전 모습./사진=인천일보DB

△박영근 시인은?

‘솔아 솔아 푸른 솔아’의 원작자인 노동자 시인 박영근은 1985년부터 2005년까지 20여 년간 인천에서 살다가 2006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1958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시인은 명문 전북 전주고등학교를 다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 반대운동을 탄압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기거하며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창립회원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민중민족문화운동문학 활동을 이어가던 시인은 전두환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1984년,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를 펴냈다.

1985년 부평 산곡동으로 이사 온 뒤,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와 삶을 함께 하고 있는 화가 성효숙 씨와 부평4동에서 거주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1998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부회장, 2000년 인천민예총 사무국장, 인천민예총 부지회장, 200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와 시분과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1984년 산문집 ‘공장옥상에 올라’를 시작으로 1984년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2009년 첫 시선집 ‘솔아 푸른 솔아’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2012년 9월 1일 그가 생전에 즐겨 찾던 인천 부평구 신트리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대표작 ‘솔아 푸른 솔아’ 원문이 육필로 새겨졌다.

2014년 9월 27일에는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가 창립돼 ‘올곧은 정신으로 시 작업을 하는 시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하기 위한 ‘박영근작품상을 제정’,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

굴뚝

김성규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굴뚝 위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보이지요

굴뚝 위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흩어져 울었을 거예요

 

파업을 지지하러 몰려온 사람들도

이제 지쳤어,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기만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사람도

굴뚝 속이라도 들어가 손바닥을 쬐고 싶은 사람도

내려오면 안 돼요 끝까지 버텨 보세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사람도

내려오라 목이 쉬어 소리 지르는 가족들도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보이지요

 

하얀 구름을 찍어내는 굴뚝도 이젠 좀 쉬어야지

모두가 굴뚝 주변에서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울 때

이야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구름이 될 때

지나가던 구름이 굴뚝 위에서 쉬다

근심 많은 사람들 이마 위로 쏟아질 때

드디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고 공장도 지쳐 쓰러졌어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자야지

언제 우리가 굴뚝 위로 올라왔지

굴뚝 위의 사람들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고

내려가야 할 사다리마저 치워지면

굴뚝 위의 사람이 종일 뱉어내는 한숨으로 안개가 끼고

 

지상의 인간들은 가끔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눈이 멀어버렸나 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먼 곳을 보며 노래하네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