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역사의 맥 누수 없이 발전시킬 것"

 

▲ 인천작가회의 회장으로 선출된 손병걸 시인은 "인천을 비롯한 안산, 화성 등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지역의 작가회의와 연계해 바닷가 이야기를 시와 소설 등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올해부터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특공대 군생활 중 희귀병 걸려 시력 잃어
2005년 시각장애인 최초 신춘문예 등단
사무처장엔 정우신 시인…'젊은 피' 수혈
문학 애호 시민 연결 프로그램 신설 구상



"인천작가회의가 출발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며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인 짧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회원들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이어져 두터운 사료가 됐으며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대단한 발자취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맥을 이어가는데 누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차근차근 설계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인천작가회의) 신임 회장으로 최근 선출된 손병걸 시인은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첫 회장이 된 의미에 대해 그는 "작가회의 자체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문학적 기치로 깊이 묻혀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인천작가회의가 장애인에게 단체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긴 것은 차별없는 문학단체를 실현시킨 진정성과 에너지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강원도 동해 출신의 손 회장은 고향에서 초·중·고를 나와 인제군 가리산에 있는 703특공대에서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군 시절 1000㎞ 행군, 낙하산 훈련 등 혹독한 특수훈련 후유증으로 '베체트병'이라는 희귀성 난치병을 얻어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됐다.

"처음엔 군 선배들도 고된 훈련으로 관절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들어 그러려니 했지만 통증이 점점 심해졌어요. '베체트병'이 관절의 뼈마디마다 고름이 생겨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시작하는데 염증이 피를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다 가장 미세한 신경조직인 눈의 포도막에 염증을 일으켰어요. 안압이 8~12 정도가 정상인데 저는 50까지 올라 눈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결국은 시력을 잃고 말았지요."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그는 학창시절 좋아했던 문학에 전념했고 2005년에 부산일보에서 '항해' 등 5편의 시로 시각장애인 최초의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 됐다.

"장애가 갑자기 다가와 사회와 격리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집에 처박혀서 시를 쓰는 것 뿐이었어요. 4~5년 동안 쓴 시가 2000편 정도 될 거에요. 처음에는 '왜 하필이면 나야' '나좀 봐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하며 징징거리며 울기도 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하소연만 늘어놓은 것들이었지요. 그러다 다시 읽어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싹 밀어버리고 새로운 목표를 갖고 도전하자고 마음먹고 2년 정도 열심히 준비해서 신춘문예를 통과하게 됐지요."

1990년 제대 후 인천과 인연을 맺은 손 회장은 앞으로 2년간 이끌게 될 인천작가회의에 20~30대 청년작가들의 회원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젊은 시인 정우신을 사무처장에 임명했다. 이와 함께 순수문예지인 계간 <작가들>과 발표지면이 부족한 회원들의 작품을 묶어 시·소설 선집을 꾸준히 발간하고 시 분과에서 두 달에 한 번씩 갖는 작품 합평회 등 이어오고 있는 행사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또 문학을 좋아하는 시민들과 학생들과의 만남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문학'을 신설해서 진행할 계획이다.

"젊은 작가들의 참여가 대단히 중요해요. 지금도 조금씩 늘고 있는데 제 임기 말쯤이면 인천작가회의가 많이 젊어질거에요. 또 인천을 비롯한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안산, 화성의 작가회의와 연계해서 작가들이 바닷가 이야기를 시와 소설 등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시작해보려구요."

시각장애인이지만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통해 글을 읽는데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그는 경희사이버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미디어문예창작과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등단한 뒤 원고 청탁과 학교, 기업, 단체 등의 강연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던 기타를 치며 중간중간 노래도 들려주며 강연을 진행하는데 그의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강의 잘 들었다'는 이메일을 보내올 때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푸른 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 등 3권의 시집과 수필집 <열개의 눈동자를 가진 어둠의 감시자 손병걸>이 있다.

"시를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얻은 답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을 우선하자였어요. 반성을 해야 발전적인 삶을 모색할 수 있지요. 또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재나 주제, 예를 들어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에 대한 '발견'과 함께 약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리기 위한 '변화' 등 세 가지 기준을 갖고 작품을 써보려고 해요."
 



인천작가회의는…

한국작가회의가 지향하는 문학 정신을 옹호하고 민족문학 건설을 위한 문학적 실천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문단활동을 통한 사회 참여 및 민주화와 민족통일, 문학인의 권익 보호, 국제 교류,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문단 위상 제고 등을 목적으로 한다.

1998년 12월11일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로 창립했고 1999년 2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가 이를 인준했다. 1999년부터 '작가 포럼'을 개최하기 시작했고, 문예지 <작가들>을 1999년 12월에 창간, 2020년 봄호(통권 72호)가 곧 나올 예정이다. 2001년부터 회원들의 시와 소설 작품집이 활발하게 간행되기 시작했다. 인천작가회의는 문학과 관련된 여러 사회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작가들 문학상'도 제정했다.

주요 활동으로 황해 문학 생태 기행, '민족 문학제'·'우리 시대 작가와의 만남'·'전국 민족 문학인 대회' 개최, 중국 조선족 문학인 교류 및 민족학교인 지린성 홍광중학교에 장학금 전달, 이주 노동자와 함께하는 '아시아 문학 낭송제'와 '인천 배다리 문화 축제 문학의 밤' 등을 열고 있다.

회원으로는 시 분야 58명, 소설 분야 18명, 아동문학 분야 7명, 평론 분야 22명이 활약하고 있다. 2020년 현재 기구 및 임원은 최원식 고문과 정세훈, 신현수 자문위원, 회장 손병걸, 부회장 조혁신, 사무처장 정우신 및 편집 위원, 이사, 감사 등이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