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재명이 잃어버리고…최복규·박정순씨 통한세월
아들 수소문 수백번 헛걸음…유전자 대조에 마지막 희망
올해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 명절에는 친지들과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게 일반적인 가정의 풍경이다. 하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명절이다.
최복규(67) 씨는 설날만 다가오면 34년 넘게 돌아오지 않는 아들 재명(당시 6세)이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오락실을 좋아하는 아들, 개구쟁이 아들, 항상 웃는 아들, 눈이 초롱초롱한 아들. 그의 기억엔 재명이는 아직 천진난만한 6살로 각인돼 있다. 재명이와 얽힌 소중한 기억이 불쑥 찾아오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죄책감과 절망,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다.
1986년 설날을 10여 일 앞둔 1월29일. 재명이는 여느 때처럼 가족이 운영한 슈퍼마켓에서 2㎞ 남짓 떨어진 집에 간다며 문밖을 나선 것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최 씨는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비야 재명이가 집에 오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이 문밖을 나섰던 아들이 오지 않았다는 노모의 한마디에 덜컥 숨이 멎었다. 설마가 현실이 됐다. 밤늦도록 재명이가 돌아오지 않자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최 씨는 마음 깊숙이 억눌렀던 기억이, 설 명절만 되면 34년 전으로 되돌아가면서 끊임없이 괴롭힘에 사로잡힌다고 했다.
"절대 잊히지 않아. 그날 내가 집에 데려다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걸세."
최 씨는 서울과 부산을 기점으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재명이를 찾아 헤맸다. 보이는 보육원마다 들러 아들을 찾았고,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줬다. 간간이 아들을 봤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모두 재명이와 또래의 비슷한 아이이거나 장난 전화, 허위제보였다. 수백 번 헛걸음했다.
남은 가족을 보살필 겨를도 없었다. 생업 포기로 집안 사정이 더 버틸 수 없게 되면서 잠시 재명이를 잊기도 했다. 최 씨는 그런 현실이 참담하다 못해 다잡았던 마음이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생사조차 알 수 없어 지난번 설에는 눈물을 머금고 차례상을 올렸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아들이 생을 마감했다면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마음에서다.
"우리가 살아야 재명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지금도 재명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DNA) 대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최근 유전자 대조로 실종된 아이를 찾았다는 언론 보도 등 소식을 접하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들이 꼭 나타난다고 굳게 믿고 있다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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