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은 러시아 연해주 옆에 길게 뻗어 있는 섬으로, 전체 인구 50만명 중 조선족계 주민이 3만명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영유권 다툼이 이어졌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러시아 영토가 됐지만,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그 여세를 몰아 섬 남부지역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사할린 동포들의 길고도 질긴 고난이 시작됐다. 일제는 만주 침략전쟁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을 대거 강제 징용했다. 이들은 탄광, 비행장, 도로건설에 강제로 투입됐다.

이후 일본은 1945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사할린에 거주했던 자국민을 전원 귀국시켰다. 그러나 강제 징용한 4만3000명은 남겨두고 떠났다. 동토의 땅에 버려진 수많은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 자리에서 얼어 죽고 굶어죽었다고 한다. 그때 숨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사할린 코르사코프 항구 언덕에 세워져 있다.

살아남은 조선인 상당수는 러시아와 북한의 회유를 무릅쓰고 무국적자로 버텼다. 모진 세월을 견뎌온 이들에게 서울에서 개최된 88년 올림픽은 꿈에도 그리던 귀국의 기회를 안겨줬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러시아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사할린 동포의 영구 귀환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4300여명이 귀국해 안산, 인천 등지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인천에는 현재 338세대 467명이 남동구, 연수구, 부평, 서구, 중구 등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14일 남동구 논현동 남동 사할린센터에서 '효 봉사 잔치'가 펼쳐졌다. 인천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걷고 시간을 쪼개 위문 잔치를 준비했다. 동암중학교 관악연주단의 서툰 솜씨에는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고, 만수고 학부모들의 우쿨렐레 연주와 풀각시 색소폰 공연에 맞춘 흥겨운 합창도 이어졌다.

하지만 사할린동포의 아픔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정부가 영구귀국 대상을 1945년 8월15일 이전에 사할린에서 태어났거나 거주한 경우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국내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은 현지의 자식들과 헤어지는 또 다른 이산의 고통을 품은 채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3건이나 제출됐지만 법안심사소위에서 멈춰선 상태다. 사할린 동포들은 지금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며 "영주 귀국 대상자를 늘려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정찬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