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한인문제 첫 연구서
한·러·일 3국 협상 문서 추적
송환 늦어진 근본적 의문 제기
▲ 한인 무국적자의 거주 증명서.
▲ 일본 밀항 후 검거되어 오무라수용소에 수용 되는 한국인들(1960).
▲ 이연식·방일권·오일환지음, 채륜, 256쪽, 1만6000원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됐다가 백발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사할린한인' 문제를 다룬 연구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됐다.

그동안 이에 관한 번역서, 르포르타주, 구술자료집, 소설 등은 간간히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러·일 3국에서 새로 발굴한 공문서 자료를 기초로 한 실증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특히 이 책은 본격적인 연구서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부담 없는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갈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사람'과 '그들의 삶'을 향한 필자들의 한결같은 시선을 느낄 수가 있다.

'사할린한인 문제를 둘러싼 한·러·일 3국의 외교협상'이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기밀 해제된 옛 소련 정부의 내부자료를 통해 소련이 굳이 한인들을 붙잡아 두려고 한 이유를 집요하게 추적한 점이다. 특히 지금까지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노동력 부족설' 또는 '점령지의 생산력 유지설'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 책은 1946년 말 '미소 간의 민간인 송환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무려 '30만명'이나 되는 일본인들을 그 후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송환했지만 '2만5000명' 남짓한 한인들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까지 감수해가며 애써 붙잡아두려고 한 이유로서 이러한 가설들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노동력 부족'을 메우거나 점령지의 생산력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강제로 끌려가 탄광이나 군수시설 등지에서 단순노동에 종사한 한인을 억류할 것이 아니라, 설령 '인권문제'가 제기되어도 어떻게든 미소 간의 민간인 송환협정을 거부함으로써 수적으로 10배가 넘는 일본인, 그것도 '고급기술과 각종 산업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일본인 인력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자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렇듯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을 기초로 기밀자료들을 하나씩 검토해 나간다. 만일 이러한 실험적 연구가 계속 축적된다면 사할린한인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담론 속에 사장된 '인간의 문제'라는 보다 본질적 측면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밖에 전후 일본정부가 사할린한인 문제를 마주해온 방식과 그것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또한 사할린한인의 억류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배경을 자기만족적인 '내셔널리즘'에서 탈피해 2차대전 종전 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 전후 인구이동의 맥락과 연계해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동시에 조망함으로써 이 문제를 둘러싼 세계사적 외연과의 접점을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각기 다른 계기로 '사할린 디아스포라'와 인연을 맺게 된 3명의 저자가 약 10여년 간 한국, 일본, 러시아를 오가며 어렵게 수집한 귀중한 사진과 사료들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연구자들도 접하기 어려웠던 참신한 자료, 그리고 이 문제를 마주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과 시선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