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은 치밀한 계산끝에 무너졌다
▲ /이미지투데이
▲ 최영태 지음, 아침이슬, 352쪽, 1만5000원
20년간 교류 지속시킨 '동방정책'
동독 혁명과 서독 대응과정 고찰
통일 후 내적통합 시행착오 시사



독일의 통일 과정은 한반도 통일의 로드맵을 그릴 때 참조할 수 있는 유일하고 유용한 '통일 교과서'이다. 통일 준비 과정과 통일 후 제기될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시사점을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동독 망명객들이 서독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직후인 1989년 8월부터 1년동안 서독 보훔대학에서 머물렀다. 독일 현대사 전공자로서, 그리고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짧다면 짧은 1년 동안에 동독혁명과 통일의 주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으니 참으로 소중한 체험을 한 셈이다.

1989년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출 사태는 11월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귀결됐다. 독일 통일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부터 통일까지 불과 11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독일 통일은 결코 1년 만에 뚝딱 완성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독일인들은 통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만일에 대비하여 치밀하게 준비했다.

롤프 마파엘(Rolf Mafael) 주한 독일 대사의 말처럼 독일 통일은 20년 동안 진행된 동방정책과 1989~1990년 동독혁명의 합작품이었다. 1969년부터 시작된 동방정책 덕분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서독인들의 인적 교류는 매년 수백만명에 이르렀다. 동·서독인들이 교류 협력하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해가면 사실상 절반의 통일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동방정책 주창자 브란트(Willy Brandt) 전 총리의 말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 영국, 프랑스와 소련에 의해 동·서독으로 분할된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1990년 통일이 되었고, 그 후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어떠한 내부 통합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책은 독일 통일 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고찰했다. 1단계는 브란트 정부 때부터 콜 정부 때까지 집권당이 바뀌어도 20년 동안 지속된 동방정책에 대한 것이다. 동방정책의 추진 과정과 이를 둘러싼 각 정당 간의 논쟁과 선거, 데탕트 시기의 외교적 노력 등을 살폈다.

2단계는 1989~1990년에 걸친 정치적 통일 과정이다. 먼저 동독혁명과 통일운동을 다루면서 동독 시민사회 세력이 목표로 내건 동독 민주화 및 재건 작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민족 통일 운동으로 진화했는지를 살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콜 총리의 '10개 항 프로그램' 제안 등 서독의 대응 과정을 분야별로 다루었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한 국가로 거듭나는 내적 통합 과정을 다룬다. 정치 군사 행정적 통합, 경제 통합, 동독 재건 과정에서 발생한 통일 비용과 이에 따른 후유증과 시행착오 등에 대해 서술했다.

저자인 최영태 교수는 전남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문학박사), 현재 전남대 사학과 교수로 있다. 독일 보훔대학 및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연구했으며,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독일현대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독일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독일 통일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베른슈타인의 민주적 사회주의론>, <미국을 바꾼 4인의 혁신주의 대통령들>(공역), <5·18, 그리고 역사>(공저) 등이 있고,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