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글에 깊은 감정 녹여냈어요"
▲ '달로 간 자전거'의 저자 양진채 소설가.
▲ 스마트소설 30편을 묶은 '달로 간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달로 간 '그'를 그리며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듯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을 썼습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이 당선되어 등단한 뒤 2014년 '구멍'으로 제2회 스마트소설 박인성 문학상을 받고 지난해엔 장편소설 '변사기담'으로 인천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2017 인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양진채 소설가가 최근 그동안 써온 스마트소설 30편을 묶어 '달로 간 자전거'를 출간했다.

"다음달이면 남편이 돌아가신지 2주기가 되요. 그동안 '변사기담'으로 꽤 유명해지고 대외적으로 뭔가 다른 글들을 쓰느라고 바빠졌지만 사실은 제 안에 차있는 슬픔이라던가 제 감정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한테만 오롯이 줄 수 있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번 소설집을 냈어요."

현재 '학산문학'의 편집주간으로 있으며 지난해까지 인천일보에 '양진채의 한 장면 읽기'라는 컬럼을 연재했던 그녀는 스마트소설은 짧은 글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응축력에 대한 희열이 있다고 강조한다.

"스마트소설은 하나의 장면, 즉 시적이미지 만으로 소설이 되어 언어의 맛, 문장의 맛을 알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스마트소설은 '장편(掌篇)', 즉 손안에 들어가는 소설이라고 하죠. 그야말로 핸드폰시대에 어울리는 짧은 시간에 완독이 가능한, 원고지 10매 내외의 분량으로 압축되어 있어야 해요. 이번 '달로 간 자전거' 안에 '청학동 느티나무'란 작품은 다섯 줄 밖에 안돼요."

그녀는 인천 주안에서 태어나 문학초등학교, 중앙여중을 졸업하고 당시 '약산 빨갱이'라 불리던 신명여고를 나와 20대 초반에 영창악기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했다. 노동운동을 하며 남편을 만났고 '해협'이라 불리던 도시산업선교회의 '인천해고자협의회'에서도 일을 하는 등 소설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듯한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유명세를 타는 소설가가 됐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91년인가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우며 노동운동의 휴지기를 보내고 있는데 현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남인순 선배가 찾아오더니 '앞으로 뭐하고 싶니?'라고 묻더라구요. 그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뭐하지?'하다 글 읽는 걸 좋아하니 독서모임에 들어갔고 거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그린 소설에 대한 감상문을 썼는데 누가 '이거 소설같은데'라고 하길래 '그래? 그러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겠는데'라며 시작한게 소설공부였어요."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소설인생'은 2002년에 인천문인협회의 '시민문예공모'에 출품한 소설이 대상에 선정되고, 2008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정식으로 등단하게 된 뒤 지금은 길고 짧은 이야기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그녀를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장편소설 '변사기담'은 최근 매각설이 나오고 있는 애관극장의 무성영화 시절 '스타변사'였던 윤기담과 기녀 묘화의 영화같은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인천이야기다. '변사'라는 흔치않은 소재와 '기담'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이함'이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주는 '변사기담'을 쓰게된 배경이나 계기에 대해 물었다.

"제가 등단을 하면서 가진 생각이 인천이란 저에게 '블루오션'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천에 대한 공부를 계속했죠. 화도진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지며 인천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인천이 가장 빛났던 시기가 개항기 때 각 지방에서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물류작업이 한창이던 인천에 왔던 그 때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애관극장의 초창기에 요즘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는 변사가 떠올랐어요. 저도 어릴 때 들었던 '이수일과 심순애'의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다는 말이냐'하는 멘트가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또 극장 옆 용동권번이 유명했고 당연히 기생이 있었을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스토리가 나와서 쓰게 됐지요."

그녀의 '변사기담' 스토리를 듣다보니 추구하는 문학관이나 '양진채 소설'의 정체성까지 이야기가 나아가게 됐다.

"제 소설의 지역적 뿌리는 인천이에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제가 인천에서 계속 살아왔잖아요. 가급적이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에 인천을 넣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죠. 또 제가 태생적으로 잘난 적이 없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시기인 20대에 노동운동을 했다보니 중산층 이상의 잘사는 사람보다 밑바닥 사람의 삶을 다루고 있고 운이 좋아서가 아니고 잘나서가 아닌 한 발 걸은 만큼의 성과만 얻을 수 있고 한 걸음을 뛰어야 한자리를 가는 그런 사람들이 제 이야기 안에 들어와 있더라구요. 그리고 영화가 영상으로 이야기 한다면 저는 소설에서 문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에요. 문학은 문장이고 언어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고 봐요."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기담'에서 쉼없이 얘기해야 했고 '부평의 자전차포'를 다녀오는 '기담'과 스마트하고 짧은 표현이 매력인 시대의 '달로 간 자전거'에서 영화 'E.T'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하는 '자전거포' 주인이었던 '그'가 극적으로 대비되는 두 소설에서 연결고리는 있을까. 있다면 뭘까.

"남편은 제가 글 쓰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그러면서 늘 자전거를 소설에 넣으면 대박날거라고 했어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