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서 사용 '의미 훼손' 지적 잇따라
시민 "시위 지지 오해 부담"…남경필 경기지사 "갈등 상징 유감"
▲ 제 98주년 삼일절인 1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한 아파트 태극기 게양률이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태극기 집회'로 불리면서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될까 하는 우려에 태극기 게양을 자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수연 기자 ksy92@incheonilbo.com
독립운동의 상징인 태극기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태극기가 탄핵반대 집회에서 시위도구로 사용되면서 태극기 의미를 놓고 한바탕 논란을 빚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98주년 삼일절인 1일 오전 수원 이의동 한 아파트 단지. 500여세대의 이 아파트 단지에는 71세대만 태극기를 게양했다. 인계동의 한 아파트 역시 160여세대 중 17세대만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체 세대의 13% 수준이다. 1300여세대가 입주한 오피스텔은 태극기 게양 세대가 9세대에 불과했다.

이 오피스텔에서 거주한다는 임모(36·여)씨는 "요즘 나라꼴을 보고 있으면 태극기를 달 마음이 생기겠냐"며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요즘, 우리 조상들이 이런 나라를 위해 만세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피스텔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해가 지날수록 태극기를 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며 "오히려 공공기관에서 거리에 내걸은 태극기가 더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태극기 게양에 대해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화성시 동탄에 위치한 한 공원.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온 정모(28·여)씨는 "중요한 날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요즘 태극기 게양의 의미를 잘모르겠다"고 말했다.

태극기가 탄핵반대 시위대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택시기사 박치민(57)씨는 "시위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태극기를 탄핵반대 상징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그렇다고 3·1절에 태극기를 단다고 해서 그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는 시각도 문제"라고 말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본의 총칼에 당당히 맞서 선조들께서 흔들었던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상징이었다 "라며 "98년이 지난 지금 3.1절을 맞아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자칫 다른 의미로 해석될까 두렵다는 분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법치를 부정하는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그 시위현장의 도구로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은 태극기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이날 오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제98주년 삼일절 기념행사 기념사를 통해 "태극기가 국가 갈등의 상징이 된 오늘날 대한민국을바라보며 마음속 깊이 죄송함을 느낀다"며 "광화문 광장을 반으로 가른 태극기와 촛불 대립은 이제 끝나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는 대형 태극기 앞세운 탄핵반대 기독교단체 회원 등의 태극기집회가 열렸고, 인근에서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탄핵인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안상아 기자·최현호기자·김중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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