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위안부였던 세 여성 이야기
다큐장르 벗어난 연출 요소 가미

누구에게나 과거에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일은 힘들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괴로움까지 동반했다면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미군이 머물던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김동령·박경태 감독)이 개봉했다.

감독은 지난 1971년 미군 기지 이전 후 철거를 앞둔 기지촌에 아직 머물고 있는 세 명의 여자를 만났다.

경기 북부의 미군 기지촌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미군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경기도 평택, 동두천, 의정부 등이 당시 대표적인 기지촌이었다.

영화는 무겁게 울려 퍼지는 포성과 전투 헬기 소리로 시작하며 다소 느슨한 컷의 전개로 주인을 짐작하기 어려운 무덤들의 풍경을 비춘다.

엄숙하게 흐르는 첫 장면은 '거미의 땅'이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찬 공간임을 나타낸다.

선유분식의 주인 박묘연은 30여 년간 분식집을 운영해왔다. 그녀는 과거의 악몽을 어렵게 내놓으며 26번의 중절수술로 떠나 보내야했던 아이를 그리워한다.

박인순은 폐지를 주워 그림을 그리고 미국에 두고 온 자식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며 시간을 보낸다. 그녀가 산속을 찾아 술을 뿌리고 소리치는 행위로 내면에 쌓인 울분을 거둬내는 모습은 서글프다.

흑인계 혼혈인 안성자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 친구 세라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친구 세라가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정신교육을 받으며 죽음보다 괴로운 시간을 보낸 '몽키하우스'를 찾아가 친구의 아픔을 경험한다.

영화에서 세 여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벗어난 연출적 요소가 상당 부분 포함돼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전개는 아니지만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다가온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로하며 의연하게 살아온 세 여자의 트라우마를 환기시키고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의 역사를 보여준다.

'거미의 땅'은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자 제13회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국내 최초 경쟁부분 초청 및 특별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150분. 15세 관람가. 영화공간주안 상영 중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