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 독설가' 막이 할머니와 '순수 귀요미' 춘희 할머니의 소소한 삶 … 긴 여운


한지붕 아래 살고 있는 두 할머니의 모습은 얼핏 보면 자매같기도 하고 때로는 모녀처럼 보인다. 하루가 멀다하고 투닥거리다가도 굽은 허리 때문에 올라간 상의를 서로 내려주며 챙기는 장면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본처와 후처의 관계를 떠올리면 막장드라마에 나올법한 살벌한 이야기를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최막이(90) 할머니와 김춘희(71) 할머니의 사이는 남다르다.

춘희 할머니는 요즘 시대에 상상하기 힘든 '씨받이'로 막이 할머니 집에 들어와 46년간 함께 살았다.

막이 할머니는 태풍과 홍역으로 아들 둘을 잃고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춘희 할머니를 데려왔다. 1960년대에 '씨받이'를 들이는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집안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자식을 낳으면 내보내기도 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막이 할머니는 8~9살 정도의 지능밖에 가지지 못한 춘희 할머니를 딸처럼 거뒀다.

<춘희막이>는 박혁지 감독이 2011년부터 2년여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2009년 OBS에서 '여보게, 내 영감의 마누라'로 처음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후 좀 더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 긴 시간의 촬영을 거쳐 영화로 제작했다.


<춘희막이>는 인적이 드문 논두렁 위에 할머니들이 사용할법한 유모차 두대가 나란히 서있는 느슨한 컷으로 시작한다. 첫 장면만 봤을 때 여느 다큐멘터리 영화와 같이 시골 풍경이 주는 잔잔한 영상미와 감동적인 스토리가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사뭇 다르다.

때가 되면 밥을 차리고 개밥도 챙겨주며 가끔 장도 보러가는 두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연출없이 담담하게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극적인 요소는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목욕을 하러 들어간 막이 할머니에게 필요 없다는 목욕물을 떠다주며 "지랄하네"라고 욕을 얻어먹는 춘희 할머니, 수시로 춘희 할머니에게 돈의 단위를 가르치는 막이 할머니의 모습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둘 사이의 애정을 미묘하게 나타낸다.

'시크'한 독설가인 막이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구박을 군말없이 따르며 웃는 얼굴을 보이는 태평한 춘희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때로는 춘희 할머니를 대하는 막이 할머니의 거친 표현이 냉정하게도 보인다. 하지만 한 푼 두 푼 모아온 통장을 꺼내들며 본인이 죽은 후 춘희 할머니에게 닥쳐올 미래를 준비하는 막이 할머니의 모습은 두 할머니의 관계가 뗄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을 나타낸다.

본처와 후처로 규정되는 두 할머니의 사연이 주는 흥미와 호기심을 넘어서는 감동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박혁지 감독은 영화에서 막이 할머니가 집안 유리창 너머로 앉아 있는 모습 위에 비치는 춘희 할머니를 여러번 보여준다. 두 분이 언제나 함께하는 동반자임을 의미하는 장면이다. 춘희 할머니와 막이 할머니의 굽은 등, 누구 하나 앞서가지 않고 나란히 걷는 모습과 같은 두 할머니의 일상이 담긴 소소한 장면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은 영화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지난 9월30일 개봉한 <춘희막이>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 중 유일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초청돼 CGV 아트하우스의 배급지원상을 받았다. 또한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JIPP다큐멘터리 피칭 최우수상, 인천다큐멘터리 피칭포럼2013 KCA 베스트 피칭상을 수상했다. 상영시간은 총 96분이며 12세이상 관람 가능하다.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