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룸메이트가 되는 일
[시, 인천을 읽다] 룸메이트가 되는 일
  • 인천일보
  • 승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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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너는 자꾸 틀린 얼굴을 하고 있구나.
그게 아니라
네가 정말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의 이야기를 떼어내고
깨끗이 닦은 벽을 너에게 비워주어야 하는데.
요오드액을 솜에 묻혀
우선 나는
너의 얼굴을 닦는 수밖에 없구나.

*

두 개의 벽과 실처럼 많은 시간들로
너는 방을 만들어야 한다.
너 자신의 눈을 모아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제멋대로
뒤엉켜 버릴 것이다.
너마저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

벽에는 이물질이 너무 많다.
뒷이야기의 풀기들
내 머리의 약간 안쪽에서 일어난 일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러니 네가 제발
진짜 너의 눈을 떠야 하는데.

너의 방에 나를 불러 주어야 하는데.


▶ 한 공간을 다른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세계와 한 세계가 만나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벽에 나의 이야기를 새기기도 하고 나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는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 지고있다. 두 세계가 충돌하며 일어나는 많은 혼란들을 서로가 어떻게 다스려가는가 하는 것이 룸메이트를 맞이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한 공간을 넘어 살아간다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세계를 나누는 일일 것이다. 이 세계는 무수한 세계들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가 자리를 비워주어야 한다는 것.

/권경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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