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자들 간담
후지코시 공장 배상금 미지급
▲ 일제강점기 시절 후지코시 군수 공장에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 전옥남 할머니가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평화도시만들기인천네트워크

"일하면서 돈도 벌고 꽃꽂이까지 배울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일본에 갔는데…."
5일 인천 부평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 '근로정신대 피해자 간담회'에서 이자순(87) 할머니는 과거 일본의 꼬임에 넘어갔던 순간을 회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1944년. 당시 전라북도 군산에 살던 이 할머니는 어느 날 학교에 찾아온 한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일본에 온다면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고 원하는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홍보 영상에 속아 일본행을 결심한 이 할머니는 부푼 마음으로 부산을 거쳐 일본 도야마현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작 눈앞에 펼쳐진 건 새로운 도시의 설렘이 아닌 일본 군수 기업 후지코시 공장과 하루 3개씩 나눠주는 작은 빵이 전부였다.

이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강제로 공장에 잡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쉬지도 못하고 일만 했다"며 "빵도 부족해 아침에 다 먹어버리면 점심과 저녁은 굶어야만 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전옥남(89) 할머니 역시 13살이던 해 후지코시 공장에 강제동원돼 끔찍한 나날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전 할머니는 "기계 부품인 베어링을 만드는 작업 중에 크게 다쳐 손가락이 잘릴 뻔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며 "앞으로는 나라를 잘 지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전쟁으로 공장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강제 노역을 위해 근로정신대를 우리나라에서 모집했다. 달콤한 말에 속아 혹독한 강제 노동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은 탓에 돈이 없어 한동안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이후 피해자들은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올해 1월 서울고법은 2심에서 '후지코시는 피해자 1인당 8000만원에서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현재 후지코시는 배상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그동안 근로정신대 피해자 편에 서서 후지코시와 싸워온 나카가와 미유키 호쿠리쿠연락회 사무국장은 "조금씩 나이를 먹는 할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후지코시가 하루빨리 배상금을 이행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임태환 기자 imsen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