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잇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북녘
[창간특집] 잇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북녘
  • 인천일보
  • 승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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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 이후, 개성일상 국내 최초 공개
그리워하길 수십년 다른 듯 닮아왔구나
▲ 판문점 북쪽 지역인 판문각에서 바라본 남측 '자유의집' 모습.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지난 6월30일 남북미 정상이 함께한 그 곳의 북측에서, 한 걸음이면 갈 수 있는 남측을 바라보는 심정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 개성시내를 가로지르는 '통일거리'가 탁 트여 시원하게 보인다. 오른쪽 아래 조선기와 건물이 '통일관' 식당이다.

 

▲ '통일관' 식당의 주방에서 조리사들이 '신선로' 요리를 만들고 있다. 북녘의 음식은 거의 대부분 맛이 아주 좋다.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맛이 좋은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 개성 '고려성균관' 도자학부 5학년 학생들이 도자기 제작 실습을 하고 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도자학부와 인삼학부는 세계에서 유일한 학과이다.

 

▲ 자남산 자락 관덕정에서 내려다 본 '조선가옥거리'. 6·25전쟁 때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것은 당시 정전회담을 하러 다니던 도로 주변 마을이라 미군의 폭격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왼쪽 위에 보이는 건축물은 이성계가 즉위식을 한 '수창궁'이다.

 

▲ 개성 시민들이 '조선가옥거리'에서 자전거로 이동을 하고 있다. 인구 40만 명의 개성에서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이다. 거의 가족 수 만큼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개성시내 중심에 있는 '개성남대문'. 망루에 옮겨 놓은 총탄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연복사종'은 많이 알려져 있다.

 

▲ '개성민속려관'에서 떡메치는 것을 재현해보고 있다. 외관은 조선가옥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는 온돌식의 호텔이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 조선가옥거리 '개성민속려관'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가야금 연주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개성시 외곽의 고려 태조 '왕건왕릉' 해설강사가 밝게 웃으며 왕릉 설명을 구성지게 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깜짝 만남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한순간에 집중시킨 판문점은 개성시 판문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53년 7월27일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민족 간 전쟁으로 분단의 상징이 된 곳이다. 70년 가까이 휴전인 상태로 지내오면서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종전선언을 넘어서는 평화협정을 맺어 남과 북이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온 민족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개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땅이 되기도 한다. 918년 고려가 세워지면서 태조 왕건이 고려의 도읍으로 삼았고, 1392년 조선 개국 뒤 한양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2년 동안 잠시 조선의 수도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 지역이었고,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북녘의 도시가 되었다.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개성에는 역사의 흔적이 적지않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개성성, 개성남대문, 만월대, 첨성대,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표충비, 고려 태조왕건릉, 공민왕릉 등으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인류역사의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전쟁시기에도 그대로 살아남은 조선시대 가옥거리, 우리 민족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새로운 역사가 될 개성공단까지 포함해 개성은 그 자체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전통적인 음식문화가 훌륭하게 전해지고 있다. 식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선 산물이 풍부하고 풍류문화가 잘 발달되어야 하는데, 개성은 고려·조선시기 국내 상업은 물론 국제교역 등으로 발달된 상업을 바탕으로 이러한 기반이 조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특히 개성고려인삼과 고려청자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서 재배되는 인삼 중에서도 개성고려인삼은 특히 효능이 탁월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다.

개성지방의 토질과 수질, 기후 조건이 인삼 재배에 가장 적합하고, 독특한 재배 방법과 전통적인 가공법으로 약효가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개성이 국제적인 무역상으로 발달하면서 인삼이 해외로 퍼져 나가면서 세계적인 이름을 떨치게 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장사꾼들의 약탈에 시달리기도 했다.

고려청자는 그릇의 표면에 입혀진 유약의 푸른빛에 따라 청자라고 불리었지만 가장 잘 만들어진 청자의 푸른색은 비취옥의 색과 비슷하여 '비색'이라고도 불렀으며, 우리 선조들의 높은 과학기술과 문화적 감성, 장인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려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렇듯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개성을 지난 6월 중순 둘러 보았다.

필자는 재외동포 신분의 언론인으로서 지난 2010년 5·24조치 이후 단독으로 북녘의 각 지역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평양, 원산 등의 지역은 비교적 알려져 있지만 개성 지역의 최근 모습은 <인천일보> 창간을 맞아 단독으로 공개한다.

최근 북미정상의 판문점 만남으로 우리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그 때가 오면 이곳 개성이 또 다시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개성=글·사진 진천규 통일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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