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석 사회연구소가능한미래 상임연구원

이란과 미국의 대결이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로부터 시작된 이번 사태는 급기야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을 내비쳤고 미국은 항공모함과 B-52전폭기를 배치했다.
2002년 비밀 핵활동 의혹으로부터 시작된 이란의 핵문제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독일(P5+1)이 참여한 6개국과 이란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미 트럼프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JCPOA의 개정을 요구했고 결국 탈퇴를 강행했다.

북한과 이란은 많은 점에서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우선 두 나라 모두 핵개발을 시도한 나라이고 그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 북한이 6자 회담을 통해 9·19공동성명에 합의를 이뤘다면 이란은 P5+1을 통해 JCPOA를 이끌어냈다. 또 두 나라 모두 '화염과 분노' '공식적인 종말'이라는 협박을 당한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이다. 이처럼 미-이란 대결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북미 대결과 비슷한 배경과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차이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인 반면 이란은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있다면 이란은 아직이다. 이러한 차이는 협상이냐 전쟁이냐는 결과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
미국은 여전히 이란을 불신한다. 또 어설픈 합의가 NPT(핵확산금지조약)레짐의 붕괴와 핵무기 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미국의 이러한 인식은 중동의 불안과 전쟁 가능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향후 북미협상에서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 미국은 이행조치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항구적 비핵화를 보장받은 후에야 제재를 해제하려 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빅딜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단계적 해결을 바라는 북한의 입장과 배치된다. 이처럼 북미 협상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팽팽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의 장기화는 우리에겐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제 아무리 비핵화 문제가 북미 간의 문제라 할지라도 그 결과는 우리를 강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미 간 조성된 긴장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언제든 한반도 전쟁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남북 모두의 공멸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한반도 긴장으로 인한 투자위축은 물론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통한 새로운 활로 모색도 가로막히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에 대한 신뢰보다 미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도 전쟁을 불사할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는 당사자로서의 확실한 입장을 갖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후 줄곧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지만 너무도 절박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우리다. 당사자는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어떠한 동맹도 우리의 생명과 번영을 담보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판문점 선언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