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곤 옹진군의회의원

 

인천~백령도를 오가는 백령주민의 발 '하모니플라워호'가 엔진고장으로 결항 중이다. 주민들은 물론 국군장병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고려고속'에서 대체선박을 운항하고 있으나 속력이 너무 느리다. 인터넷 배표예매도 불가능하고, 미리 연안부두에 도착해 주민대기자 명단을 작성후 표를 구해야 겨우 백령도에 갈 수 있다. 백령도가 고향인 필자 역시 의정활동을 마치고 난 뒤 마치 구걸하듯 얻은 표를 갖고 겨우 고향집으로 돌아오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마치 로또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그나마 일찍 나와 선표를 구한 사람들은 천만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선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들, 딸, 며느리가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를 다시 끌고 되돌아가야 한다. 서해5도주민들은 그럴 때마다 섬에 거주하는 비애와 자존감 하락에 분노마저 솟아오른다.
25년 전, 고속 여객선 취항으로 3시간40분~4시간이던 이동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25년이라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시기로 조금이라도 빨라지고 교통편이 좋아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한마디로 섬 주민들의 삶에 대해 관계당국의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 주민들은 얼마전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 무엇보다 인천에서 오가는 여객선이 더 편리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항로가 활성화되어 더 빠르고 쾌적한 여객선이 배치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좋아지기는 커녕 배가 고장나 발이 묶인 채 먼산만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서해5도 주민들은 포탄이 떨어지거나 자연재해를 입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선산지기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배 한 척이 고장나자 고향에도 못 들어가는 현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명색이 OECD 회원국인데 교통편이 없어 집에 돌아가지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서해5도 주민들에겐 행복추구권이 없는 것 같다. 서해5도 주민들은 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선표 구매에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가. 아파서 육지에 가야 하고, 상급학교 진학상담 받으러, 장가가려고 맞선 보러 가려해도 마음놓고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현재 관계당국은 백령도 신공항 건설, 중국~백령 간 항로 개설, 연안여객 터미널 이전 등 거창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작 섬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뒷전인듯 하다. 20여년 전에도 4시간 걸리던 인천~백령 항로가 5시간으로 늘어나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당국과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1970년대 옹진군이 운영하던 '통운사업소'를 부활시킬 필요도 있다. 이 통운사업소를 중심으로 주민을 위한 효율적인 여객선 운영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선심성 행정보다 서해5도 주민들의 생활불편을 덜어주는 일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