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뿌리"
"기억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뿌리"
  • 이주영
  • 승인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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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역사 원정대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 - 난징·충칭 에필로그]
▲ 난징 리지샹(利濟巷) 위안소 구지 진열관을 찾은 청소년 역사 원정대원들이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의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을 찾은 '청소년 역사 원정대' 참가 학생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청소년 역사 원정대원들이 태극기를 펼쳐들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박서우(왼쪽)씨·박종휘씨.

 

원정대, 난징서 위안부·대학살 아픔 현장 방문

임정 윤봉길 의사 홍커우 의거 후 상하이 떠나


김구 선생 진강 목원소학교서 '망국 설움' 강연

충칭 연화지·광복군 청사 찾아 … 당시 숨결 느껴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 첫 발을 내딛기 5일차, 6000㎞의 장정에 마지막 충칭에 도착했다. 임정은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 후 상하이를 떠나 돌고 돌아 난징에 닻을 내렸고, 다시 중·일 전쟁 여파로 중국 남쪽을 돌다 충칭에 터를 잡았다. 5년의 시간 충칭 삶이 이어졌다. 13명의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여독이 풀리기도 전 짐을 쌌고 임정 요인과 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여정을 이어갔다.

난징에서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에 눈물을 훔쳤고, 일제가 자행한 난징 대학살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충칭에 도착해서는 가슴과 가슴에 태극기를 그리고 조국을 노래했다.

▲지구인, 난징을 잊지 말자

빗방울이 제법 굵다. 밝기만 할 것 같은 남국은 대낮인데도 잿빛이다. 도심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데, 쇠붙이로 짜놓은 울타리 사이로 처절한 동상이 망막을 강타한다. 멍하니 동상을 바라보는데, 뒤꿈치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솟아온다.

고개를 떨군 한 여인은 부풀어 오른 배만을 어루만진다. 옆에 선 여인들 역시 맨발로 멍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주시한다. 4월9일 난징(南京)의 첫 방문지, '리지샹(利濟巷) 위안소 구지 진열관'이다. 난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흔적을 찾기에 청소년 역사 원정대의 일정이 빠듯했다. 대신 우린 일제 때 '고통'의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가 '고난'이었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과 사를 찾았다.

옛 위안소 자리에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자료를 진열한 이곳, 만삭의 슬픈 표정을 짓는 동상은 우리 박영심 할머니다. 박영심 할머니의 결정적 증언, 난징에서 일제에 의한 일그러진 삶이 사실로 입증되며 이 곳은 문을 열었다. 차마 말을 이을 수 없는 현장의 기록들. 그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박영심 할머니. 그리고 이 곳에 끌려온 세계의 여인들. 일제의 만행은 이 곳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린 난징에서 두 번째 방문지 남경대도살 기념관으로 향했다. 하늘은 더욱 시커멓다.

난징 도심은 1937년 일제의 난징 대학살을 기억하는 듯 먹구름에 싸였다. 당시 일본군 5만 명은 6주간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을 자행했다. 60만 주민은 6주 뒤 30만으로 줄었다. 기념관 내부 한 중간 유리판 아래로 당시 유해들이 처참하게 땅 속에 박혀 있다. 벽면에는 철판으로 된 책이 늘어서 있고, 그 속에 희생자 명단이 빼곡히 음각돼 있다. 옆면 가득 당시를 기억하던 생존자 사진이 조명을 배경으로 걸려 있다.

어둑한 사진은 생을 다한 사람이다.

항저우를 출발해 난징에 도착하기 앞서 진강을 찾았다. 이 곳 옛 목원소학교에서 김구는 '조선 망국의 참상'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골목길 끝에 자리한 목원소학교 터. 방문객이 이 곳을 찾기에 진강은 외지다.

그렇기에 우리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잊지 않으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