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경제특구 지정'에 필요한 법률 제정조차 계류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경영 악화에도 "재입주" 밝혀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판문점 선언을 남겼다. 3개장과 13개조항으로 이뤄진 선언문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제1항6조에서는 남북경협과 관련한 내용을 언급했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노무현·김정일 당시 두 정상이 합의한 10·4선언의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가운데에는 경제특구건설과 개성공단 확대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았다. 선언문 속 통일경제특구는 관련법조차 제정되지 못했으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폐업의 위기 속에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기약없는 통일경제특구 지정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인천을 포함한 접경지역들이 주목하고 있는 '통일경제특구 지정' 사업이 답보상태다. 통일경제특구 지정을 위해 선행돼야 하는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은 진척이 없다.

지난 4일 열린 임시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에 통일경제특구법안을 상정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법안 관련 공청회를 추진하자는 의견은 나왔지만 법안 제정에 대한 명확한 추진 계획은 세우지 못했다. 그동안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을 위한 관련 법안 발의는 수십 건에 달했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내 법 제정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남북관계 경색으로 여전히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통일경제특구법은 군사분계선(MDL) 남쪽에 개성공단처럼 남측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을 결합한 특구를 설치함을 골자로 한다. 지리적으로 북측과 인접한 인천, 경기도, 강원도 등 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내 특구를 조성하기 위해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구로 지정되면 '평화 도시'라는 대외적인 이미지 조성은 물론 세제 감면과 기반시설 지원, 법률에 규정한 인·허가 의제처리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인천시는 접경지역인 강화 교동에 평화산단을 만들어 향후 통일경제특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천과 개성, 해주를 연계한 남북 공동 경제자유구역 조성할 방침이다.
모든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남북 간 규제 완화가 필수적인 만큼 현재는 남북관계를 주시하는데 머물고 있다.

▲버티기 힘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겐 2016년 2월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정부가 돌연 개성공단 폐쇄 방침을 밝히면서, 공장 설비와 자재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나듯 개성을 떠났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꺾여버린 남북관계에 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25일 개성공단기업협회 등에 따르면 인천의 개성공단 입주기업 18곳 가운데 3곳이 이전하거나 폐업처리됐다. 서구에 본사를 두고 주방기구를 제조하던 A사는 개성공단 폐쇄 1년 만인 지난 2017년 상반기 문을 닫았다. 중구에서 어망을 만들던 B사는 충남 예산으로 터를 옮겼으며 남동구 소재 전자부품 제조업체 C사는 경기도로 이전했다. 연수구에서 연료펌프 전문 업체로 세계시장을 주무르던 D사는 부도 위기를 맞아 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중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의 개성공단 입주기업 108개사를 대상으로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경영환경 및 향후전망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76.9%는 "중단 이전에 비해 경영상황이 악화됐다"라고 답했다. "사실상 폐업 상태"라고 밝힌 기업도 9.3%에 달했다.

경영상 가장 어려운 점으로 절반 이상이 '노무비 등 경영 자금 부족'(61.6%)을 꼽았으며 '거래처 감소에 따른 주문량 부족'(23.1%), '설비 부족'(13.0%) 등도 애로사항으로 거론됐다.
나아지지 않는 경영상황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남북관계 속에서도 입주기업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응답기업의 98.2%는 여전히 재입주 의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 정부 임기 내 재가동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기업도 73.2%나 됐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 견줘 '무조건 재입주 하겠다'는 비율은 26.7%에서 56.5%로 2배 이상 뛰었다.

기업은 4·27 판문점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한용 전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희망의 싹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4·27 판문점선언과 정신, 이행은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북미정상회담 등 대외적인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이 움직이는 것이다. 정부가 큰 틀만 강조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안나 기자 lucete237@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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