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동의보감한의원 원장


'화병'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갱년기 급격한 호르몬 변화에 연쇄반응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분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둘째는 체질적으로 몸의 에너지 대사가 활발하여 열이 많고, 과다하게 항진되어 발생한다. 셋째는 정신의학적 문제로 성장기 학대나 인간관계의 단절, 인생의 굴곡 속에서 각종 사건의 충격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모두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증상이 발생하며, 두 개나 세 개의 원인이 복합되는 경우도 많다.

한의학에는 음허화동(陰虛火動)이란 말이 있다. 음(陰)이 부족하면 화(火)가 발생한다는 말인데, 이 음(陰)은 혈액, 골수, 성(性)에너지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성호르몬, 남성호르몬도 이러한 개념에 포함된다. 즉 성장, 노화방지, 성호르몬 등과 관련된 인체의 많은 기능들이 정신적인 기능과도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음(陰)적인 기능이 균형을 잃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결국 화(火)가 나고, 짜증이 나고, 결국 분노가 치밀게 된다는 것이다.

화병의 증상을 보자면 얼굴에 열기가 올라 빨개지고, 머리에서 진땀을 흘리고, 더위를 많이 타고, 뒷목이 뻐근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면증이 생기고, 전신적 쇠약 피로 상태를 초래한다. 심리적으로는 흥분과 분노, 짜증이 나는데, 가슴위쪽 상체는 과다항진, 나머지는 기능저하의 상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경우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여 화병의 단계에 따라 관련된 오장육부의 균형을 맞추고 조정하는 치료를 하게 된다. 오행(五行)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노희사우공(怒喜思憂恐)으로 나뉜다. 분노, 기쁨, 사려, 근심, 공포가 그것이다. 화병은 노여움에 속하고, 오행의 상생(相生)이론에 따르면 순서대로 공포와 두려움, 불안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분노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즘 사회의 사건사고에 유난히 분노조절장애란 말이 많이 들려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공포, 두려움, 불안의 감정이 예전보다 팽배해져있다는 뜻일까. 생각해보면 분노는 요즘 유행하는 '좀비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로 변하는 좀비 바이러스처럼 분노나 화병도 주변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화라는 감정의 병은 타인에게, 특히 자신보다 약자에게 과도하게 상처를 입히고, 피해자에게 분노의 감정을 발생해 전염, 확대할 수도 있다. 분노는 마음속에 잠복되어 있다가 작은 불꽃과 기회가 주어지면 과도한 폭발로 분노조절장애 사건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의학은 자연과 인간을 아주 오랫동안 관찰해 왔다. 자연과 인간은 닮아 있다. 둘 다 생장수장(生長收藏)의 기본적인 주기를 반복한다. 나고, 자라고, 수확하고, 저장한다. 겨울은 안으로 침잠하여 저장하는 계절이며 새로운 생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겨울은 모든 것이 없어질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인생도 인간관계 속에서 생장수장을 반복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 그것이 두려움과 분노를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한의학의 지혜는 가르치고 있다. 바야흐로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겨울, 무엇을 안으로 깊이 흡수하여 새로운 인생의 봄을 준비해야 할까.